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증액을
비판했다가 사퇴 압박을 받았다
구미 시민이라 해서 박정희를
다 찬양하는 줄 알면 오해다
11월14일 구미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가 열린다. 2008년 560만원이던 시예산이 ‘서거 30주년’이라는 명목 아래 이듬해 639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올해는 6820만원이다. 나는 9월 제2회 추가경정예산 심사에서, 탄신제 예산과 추모제 예산 700만원, 사진첩 발간 예산 1000만원을 전액삭감하라고 요구했다.
생가 관리는 문화재 보존으로 인정한다 쳐도, 이외의 기념예산도 만만치 않다. 지난 7월의 업무보고에 따르면, 구미시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 191억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박정희 대통령 홍보관을 설치하는 데 54억원, 영남대의 박정희리더십연구원에 연간 1억원, 제11회 대한민국정수대전에 1억7000만원을 들인다.
예산집행에서 액수보다 중요한 건 가치판단이다. 박정희는 겹겹의 논란과 큼직한 오점들을 남긴 인물이다. 그래서 나는 기념사업을 “지지자들끼리 자부담으로 하라”고 주장했다. 물론 구미시의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과거청산은 5·16 쿠데타처럼 벼락같이 찾아오지는 않기에 삭감요망을 관철할 수는 없었다.
회기가 끝난 후 추석을 전후해 친박연합이 ‘발언을 해명하지 못하면 사퇴하라’는 투의 성명을 내더니, 한참이 지나 지역언론 논설실장이 양비론을 펴는 체하며 나를 비판하고 박정희기념사업을 강조하는 논설을 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의 반민주성은 물론 경제적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기 불로소득은 무려 생산소득의 두배 반에 달했다. 그 중심에는 예금소득의 10배에 달하는 주요 도시 부동산지가의 폭등이 있었다. 횡단으로 지으라는 국내외의 권고를 무시하고 강행된 경부고속국도 사업에서는 인부 77명이 사망하고, 끊임없는 교통사고가 일어났으며, 이후 10년간 도로를 보수하는 비용은 처음의 공사비용에 맞먹었다.
독재정권이 키운 재벌의 날뜀은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아 ‘공적 투자’는 ‘사적 독점’으로 귀결됐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 향상을 밑돌고, 불평등과 노동탄압이 만연했다. 결국 정권 말기 한국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부마항쟁도 기실 경제적 실패에서 비롯됐다. 윗목에는 온기가 들지 않는데 구들장은 안 고치고 끊임없이 장작만을 투입한 지속 불가능한 성장과 발전 없는 발전. 유신정권은 남한의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북한화’했다.
하지만 반대편의 그 누구도 이러한 비판에 재반박을 하지 못했고, 정체불명의 ‘지역정서’를 끌어들였다. 그들은 내 견해를 ‘사견’으로 규정하면서 23명이나 되는 시의원이 박정희 문제에 관해 모두 자기 뜻대로 생각하기를 기대했다. 그들의 사고에 따르면, 북한 사람이 “수령님 만세”를 부르고 나치시대 독일의 시민대표자들이 히틀러 독재에 침묵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것이 ‘지역(국민)정서’이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대응하기는커녕 반대의견을 아예 봉쇄하려고 하는 ‘열린 사회의 적’들. 그들은 박정희조차 구현하지 못한 전체주의를 내면화한 채 밖으로는 패권주의를, 안으로는 획일주의를 휘두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박증에 물든 인간일수록 한없이 취약하고 우스워진다. 일개 시의원의 도전에 호들갑을 떨며 입장 변경 또는 침묵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라. 구미 시민 가운데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은 그들의 예상보다는 많다. 박정희에 다소 긍정적이더라도 민간에서 자부담하거나 공과를 같이 전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찬반을 막론하고 대중은 박정희식 정치·경제에서 몸과 마음이 멀어졌고 그것은 최근의 여론조사가 방증한다. 구미라고 예외일까? 더구나 구미 시민의 대다수는 외지 출신이고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이다. 박정희 찬양자들이 과연 언제까지 구미의 재구성을 막을 수 있을까. 얼마가 걸릴지 몰라도 시간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힘’을 편들 것이다. 만물은 변하며,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김수민 구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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