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네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가 평통사 대표이기 때문에
너를 신뢰할 수 없어 해고한다”
15년간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이 어느 날 갑자기 결석을 했다. 만나려고 해도 회피했다. 몇 달이 계속됐다. 몇 달이 지나서야 그동안 일어난 기가 막힌 사연을 알게 됐다. 그는 군산 미군부대(미 제8전투비행단)에서 17년간 전기 기술자로 성실하게 근무한 사람이다. 느닷없이 지난 6월 미군 수사대에 불려가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군사기밀을 누출한 적이 없는지?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라는 단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다. 군용견과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고, 개인용 컴퓨터까지 압수 수색했다. 조사과정에 대해서 외부에 함구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몇 달간 조사를 받았으나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뭔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결국 그를 해고했다. ‘문제는 없으나 너를 신뢰할 수 없다.’
조사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2007년 가을 나는 교인들의 직장을 순회 심방한 적이 있다. 심방은 목사가 하는 일상적 일이다. 그가 일하는 미군부대를 방문했다. 근무에 지장을 안 주려고 점심에 잠시 신앙적인 대화를 나눈 후 곧바로 부대를 나왔다. 통상적으로 누구나 직원의 안내(에스코트)를 받으면 부대를 출입할 수 있었다. 식당이나 골프장을 출입하는 민간인이 수없이 많으며, 미군부대에서도 한-미 친선행사의 일환으로 연 1회 부대를 개방하기도 한다.
심방을 다녀온 뒤 교인들의 직장 상황을 교회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사무실 책상을 배경으로 한 사진 한 장과 그가 전기 기술자로서 부대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는 정도의 간단한 내용이었다. 카페 공간은 오직 우리 교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된 공간이었다. 카페방의 이름도 우리끼리만 교제하자는 뜻으로 ‘우리끼리만’이라고 붙였다.
2008년부터 이 글이 문제가 됐다. 그해에 나는 군산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대표를 맡았다. 평통사는 미군 범죄를 비롯한 주한 미군 문제, 국방예산 삭감, 공격무기 도입 반대, 평화군축 문제 등 우리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일하는 전국적인 단체이다. 취지와 목표에 동감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이다. 미군의 눈에 내가 마치 반미 테러단체의 수괴라도 되는 듯 비친 모양이다.
그해 9월11일부터 미군 수사대의 은밀한 사찰이 시작됐다. 당사자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고구마 줄기를 캐내듯이, 혹은 간첩조직을 일망타진하려고 하듯이 주변의 인간관계, 우리 교회의 구성원과 성향, 시민사회단체 활동 여부, 군사기밀 유출 혐의 등에 관해서 구석구석 탐색했다. 교회 카페의 비밀공간까지 살펴보았다.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일이지만, 사실 그 글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당사자와 나, 우리 교회, 평통사 등에 대해서 뒷조사를 했다. 이런 불법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인 수사기록 공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2년 가까이 누군가 나를 미행, 도청, 해킹, 감시해 왔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불쾌함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의 민간인 사찰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과연 미군 수사대가 민간인과 교회, 시민사회단체를 사찰할 수 있는 것인가?
2년 가까이 조사를 했지만 결국 그에게서 아무런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평통사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사회적 활동에 관심도 없었다. 그는 전형적인 소시민으로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일 뿐이었다. 평통사 활동은, 그가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가 개인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를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반미단체 대표인 위험한 인물을 부대 안에 끌어들여서 보안성을 위반했고, 둘째, 위험한 인물과 부적절한 접촉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부대를 어떤 위험에 빠뜨렸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대목이다. 현 정부 들어서 이전 정권에 협조하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에서 밀려난 여러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라면 한국 경찰에 의뢰해서라도 나를 직접 조사할 일이지,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교인에게 피해를 주고 해고했는가? 내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라면 2년 가까이 은밀하게 뒷조사를 할 것이 아니라, 목사와 관계를 끊으라든지, 그 교회에 출석하지 말라고 사전에 경고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불쾌하더라도 내가 수용했을 것이다. 이런 은밀한 공작도 모른 채 나는 작년에도 또 한차례 미군부대에 심방을 갔다. 이런 예를 들 수 있다. 부모가 보기에 자기 자녀가 위험한 친구를 사귀고 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지켜보고 미행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녀를 집에서 내쫓았다. ‘너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네가 계속 위험한 친구를 사귀고 있으므로 집에서 나가야 한다.’ 이 사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네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가 평통사 대표이기 때문에 너를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너를 해고한다.’ 그의 동료 직원들은 농담 삼아서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한다. ‘교회를 잘 골라서 나가지…’ 여기가 아프간인가? 이라크인가? 여기가 보도연맹 사건이 벌어진 한국전쟁의 현장인가? 선량한 시민을 고문 조작해서 간첩으로 몰던 유신시대인가? 나는 요구한다.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직 시켜야 한다. 미군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은 근절되어야 한다. 수사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신앙과 선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중지되어야 한다. 유승기 군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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