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도시락이라도 줘라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들을 추모 백일장으로
욕보이게 해서는 안 되잖는가
최근 학생들을 데리고 2주 연속 황순원문학제와 토지문학제 백일장에 다녀왔다. 경기도 양평군, 경상남도 하동군에 위치한 ‘소나기마을’과 ‘최참판댁’에서 열린 백일장이라 사실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대회였다.
두 백일장은 각각 황순원문학제·토지문학제 행사의 하나로 열린 것이었다. 백일장만 하는 대회보다 자칫 소홀할 수 있는 ‘함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점심시간이 낀 백일장인데도 학생들에게 식사 제공은 하지 않은 것이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경제 활성화가 아닐까 싶다. 지역축제에 놀러온 많은 관광객들이 돈을 펑펑 써주길 고대하듯 백일장 참가 학생들의 주머니를 노린 것이다. 참으로 인색하고 치사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지역축제의 하나로 열릴망정 백일장은 그렇게 접근해선 안 된다. 특히 작고한 문인 추모 백일장의 경우 좋은 일 하면서 욕 얻어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황순원과 박경리를 기린다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오라고 해놓고 밥도 안 주느냐’는 불만 등 나쁜 인상을 심어줘서 되겠는가?
두 백일장의 경우 장소는 거의 산속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식당도 마땅하지 않다. 토지백일장은 국밥과 떡국을 메뉴로 하는 장터식당이 행사장 지척에 있었지만, 황순원백일장 ‘소나기마을’엔 그런 곳마저 없었다. 주최 쪽에선 ‘도시락지참’을 알리고 있지만,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이다. 점심을 학교급식으로 대신한 지도 10여년이 되었다. 가족나들이라면 혹 모를까 어느 엄마가 문인 추모 백일장을 가는 자녀 도시락을 싸줄 수 있을까? 그런 ‘탁상행정’으로 문인 추모 백일장을 연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설마 예산이 없어 점심 제공을 못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실제 참가학생 점심 제공에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 사전 인터넷 접수로 대략적 인원을 파악하고, 도시락을 배달해오면 될 일이다. 실제로 조병화백일장·윤선도백일장 등 점심을 주는 곳도 많다. 당연히 지역업체를 이용하게 되므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비단 두 곳뿐만이 아니다. 경북 고령군의 이조년백일장, 충북 옥천군의 지용백일장, 전남 강진군의 영랑백일장 등 지역축제와 연계한 문학제 백일장에선 거의 점심을 주지 않는다. 일부 백일장에선 빵과 우유 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간식일 뿐이다.
사실은 황순원백일장·토지백일장에서 내 제자들이 각각 가작과 차하상을 받기도 해 그냥 넘어갈까 했다. 또 점심도 안 주는 백일장이니 참가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선 지도교사로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기본적으로 추모 백일장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들을 욕보이게 해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응당 지원되는 예산은 지차체 쌈짓돈이 아니다. 지역문인협회나 행사추진위원회의 것은 더욱 아니다. 다름 아닌 국민세금의 일부이다.
장세진 전북 군산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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