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현실과 가상을 분리해
게임에 몰두한 이들이다
타블로, 고소를 취하하지 마라 장장 10개월을 끌어오던 타블로의 학력 의혹에 관한 논쟁은 이제야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사건에 대한 해석과 평가만이 남았다. 이 사건은 ‘철부지 악플러’들의 ‘정신 나간 행동’으로 판정 나는 추세다.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을 무기로 한 악플러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자주 ‘반복’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급진적이었던’(?) 왓비컴스와 일명 타까들은 단순 악플러들과는 달리 ‘진실’과 ‘상식’으로 무장한 나머지,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들의 가장 솔직한 이면을 드러내는 데 크게 공조함으로써 그간 벌어졌던 악플러들의 행동 양태를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틀을 제공해주었다. 전통적인 정치학의 명제에 따르면 시민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네티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한 일들을 폭로하여 ‘추천’을 받을 때, 끊임없이 ‘리트위트’를 받을 때, 현실을 풍자하고 비꼬는 센스 넘치는 ‘베플’로 인정받을 때, 네이버 지식인에 훌륭한 답글을 달아 내공을 쌓아갈 때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이 ‘물질적 대가를 바라지 않는 정신적 충족’이 바로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을 시민사회로 만든 구조적 힘이자, 진보적 지식인들이 호들갑을 떠는 ‘미래지향적 네트워킹(혹은 소셜) 시스템이니 뭐니’ 하는 것의 실체다. 싸이월드 글에 달린 댓글들은 ‘나를 베플로 추천해주시오’라고 뽐내는 치열한 경연의 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경연이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쟁으로 변화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데 있다. 이는 인터넷 게임의 구조와 유사하다. 온라인 게임은 접속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쟁의 장이다. 레벨 1과 만렙, 승률 1%와 승률 99%는 그 유저를 설명해주며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를 구별해준다. 왓비컴스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있다면 타블로가 이긴 것으로, 승자로서 얼마나 기쁘겠는가? 고소를 취하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제 운영자를 그만두고 패자로 떠나겠다. 타블로가 이겼다”고 말한 것이 이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이것을 하나의 게임, 그리고 경기라고 표현하며 타블로가 승자이고 자신이 패자라고 규정한다. 왜 그들은 경찰조사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가? 그것은 이것이 철저하게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패배하기 때문이다. 왓비컴스는 끝까지 타블로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고, ‘경찰이 인정했다면 내가 진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들은 ‘믿지 않기 위해 믿는다’. 또한 왜 상진세는 그렇게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믿고 있음에도 정작 고소, 고발을 취하했고, 왓비컴스 역시도 타진요 회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말하는가? 이 또한 이것이 게임이기 때문이다. 왓비컴스는 타블로에게 “경기에서 이겼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 상황은 진정한 현실이 아니라 게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게임이 진짜 현실과 연결되기를(구속, 고소·고발 등) 거부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왓비컴스를 비롯한 악플러들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게임에 몰두한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현실과 가상을 분리’했기 때문에 게임에 몰두한 이들이다. 왓비컴스는 이제 운영자를 그만두고 떠나겠다고 한다. 이 게임에서 로그아웃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패자가 되면 그들은 피시(PC)를 끄면 그만이다. 고스톱을 치다가 지는 상황에 몰리면 판을 뒤엎는 사람처럼, “에이, 졌어. 나 안 해” 하고 인터넷을 끄면 되는 것이다.(혹은 “다음 판에선 꼭 이겨야지.”) 현실 세계와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이라는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탈주의 용이함에 있다. 최진실에게 악플을 달았던 이들은 지금도 버젓이 현실세계의 한 구성원으로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타진요와 왓비컴스 역시 게임을 끄고 현실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타블로는 <엠비시 스페셜>에서 “내 자신이 현실의 존재가 아닌 게임 캐릭터, 아바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는데 그 느낌은 정확한 것이다.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 타블로는 왓비컴스가 충고한 대로 행복하게 살기는커녕 상처받은 채 현실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역시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 최진실은 가상에서의 악플에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둘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악플러들은 아무렇지 않게 현실을 살아가며, 다시 게임에 접속하여 누군가와의 진리 투쟁, 전쟁에 들어갈 것이다. 왓비컴스는 타블로 말고도 수많은 연예인에게 악플을 남겨오던 악플러였다. 그는 만렙을 찍은 능수능란한 유저였던 셈이다. 그래서 방법은 한 가지이다. 이 유저들에게 당신들이 탈주한 이 가상현실은 단지 가상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철저한 구별과 분리를 일삼는 이 악플러들은 이 구별과 분리를 모호하게 함으로써만 처벌 가능하다. 당신들이 일삼은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최진실을 찌른 당신들의 검은 ‘실제로’ 최진실을 죽게 했으며, 타블로를 찌른 당신들의 무기는 ‘실제로’ 타블로를 찔러서 상처를 입혔다. 경찰조사를 받으며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들은 이것이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타블로, 제발 고소를 취하하지 마라. 선처를 베풀지도 마라. 이들은 악한 자들이 아니기에 선을 베풀 필요가 없다. 이들은 단지 가상과 현실을 너무나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아는 평범한 이들일 뿐이다. 조윤호 서울 도봉구 창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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