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치 ‘<덕혜옹주>표절 유감’에 대한 작가 반론
2007년 <덕혜옹주> 집필을 시작했다. 신문에 게재된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게 그 계기였다. 이토록 총명하고 순수한 눈망울을 지닌 아기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니. 소설을 시작한 이유는 오로지 그녀의 빛바랜 삶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제국의 후예들>(2006년),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2005년) 등 여러 가지 문헌자료들에서부터 <문화방송> 광복 특집 드라마 <덕혜옹주>(1996년)와 <한국방송>의 <한국사-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2007년) 등의 영상자료에 이르기까지 구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살폈다. 그렇게 <덕혜옹주>는 2009년 12월에 출간됐다. ‘옹주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현실화됐다.
그런데 지난 9월 당황스러운 소식을 듣고 말았다. <덕혜희>의 작가 혼마 야스코가 소설 <덕혜옹주>를 표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혼마 야스코 쪽은 “소설 <덕혜옹주>가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차용했으며, (<덕혜희>를) 1차 사료로 참고했다는 말 자체가 표절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소설의 말미와 강연회에서 <덕혜희>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그 책이 갖는 의미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도서관에 헌증하오니 많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글귀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며, 일본인으로서 덕혜옹주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덕혜옹주는 역사 속 인물이다. <덕혜희> 역시 다른 이들의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 전기문이다. 혼마 야스코가 ‘덕혜옹주의 삶’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닌 이상, 그분의 삶과 황실가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그 누구의 귀속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범위도 ‘역사적 사실이나 사상을 서술한 부분’이 아닌 ‘창작적으로 표현한 문장’에 국한된다. 그런데 소설 <덕혜옹주>와 전기문 <덕혜희>의 어떤 부분이 표절을 의심케 한다는 말인가? 두 책을 놓고 아무리 비교해보아도 역사적 사실을 제외한 어떤 부분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를 넓히는 데 이용한 소설’이라고 주장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나는 덕혜옹주의 삶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망국의 한을 지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묘사했다. 그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술하려고 했다면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역사적 사실이 담지 못하는 부분들을 말하기 위해 소설을 썼고, 그렇기에 그녀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다.
그러한 의도로 집필한 소설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의 표절 시비는 작가가 지닌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매우 비상식적인 발상이다.
권비영 소설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