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그래,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와 아무 관계 없다
그들은 국민도, 궁민도 아니다
‘굿 모닝’은 그들에게 슬픈 인사다
그렇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맞다. 100여일째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앞에서 노숙을 하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잠깐 엔진을 굴리는 기름이거나, 마모되면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할 공구에 불과하다. 하청에 재하청을 통해 사고팔 수 있는 값싼 산업소비재들이다.
그렇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맞다. 그들은 현대기아차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들이다. 정몽구 회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들이다. 그들이 살인적인 주야 맞교대로 생산한 ‘꿈의 모닝’이 기아 상표를 멋지게 달고 100만대가 팔려나갔다 해도 그들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들이 생산한 ‘모닝’의 연구개발, 마케팅, 판매, 애프터서비스(AS)를 현대기아차가 한다 해도, 동희오토의 몸인 토지와 건물이 모두 현대차 소유라 해도, 장기인 생산라인의 기계장치가 정작은 현대캐피탈에서 금융리스로 빌려 쓰는 것이라 해도, 모닝차의 가슴인 엔진이 현대차울산공장(가솔린)과 기아차 화성공장(디젤)에서 만들어진다 해도, 현재 진행중인 공장 증설을 기아차 생산기술팀이 직접 한다고 해도, 혹여라도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동희오토 주식의 35%를 현대기아차가 갖고 있다고 해도, 그래서 동희오토의 피땀인 수익의 대부분을 현대기아차가 가져간다고 해도, 기아차 소하리 공장장이 좌천되어 동희오토 공장장으로 오고 동희오토 공장장이 기아차 소하리 공장으로 승승장구해 간다 해도, 우리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어야 한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더더욱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타깝게도 동희오토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희오토는 다시 생산라인별로 17개의 문어발 위장도급사로 나뉘어 있다. 그들은 그 17개 문어발의 어느 빨판엔가로 흡수된 값싼 먹이였을 뿐이다. 감히 누군가 본인이 실제로는 동희오토 소속 노동자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는 현대기아차 소속의 노동자라고 얘기하는 노동자가 있으면 동희오토는 가차 없이 그를 빨아들인 문어발을 잘라내 버렸다. 아니 법인명을 바꿔버렸다. 잘린 문어발은 그대로 있고, 그 안의 먹이들 이름이 소수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다. 꽃다지의 노래에 나오는 궁민조차도 못 된다. 주야 맞교대로 언젠간 다가올 ‘굿 모닝’을 위해 일했지만 이 나라의 행정관서와 법정은 그들은 유령이었을 뿐이었다고 얘기한다. 당신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한다. 당신들이 했다는 노동의 공간과 시간들은 실제로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망상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 이 사회는 이상한 나라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에 재재하청으로, 파견노동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당분간만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는 유령들의 사회이지 정상 사회가 아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중세 봉건시대 각 영주들이 나서서 나의 노예라고, 내 나라의 노예들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던 시대의 노예들은 그래도 행복했다. 반대로 명백히 부려먹히고도 그 주인인 현대기아차로부터 나는 너를 부려먹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처지로 이 땅을 살아가는 860만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그 가축들은, 중세 봉건시대 영지에서 살던 노예들의 처지보다 더 끔찍하다고 얘기해야 한다.
그렇다.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 그런 동희오토 비정규직들이 이 땅 어딘가에서 100여일째 외롭게 노숙을 하고 있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만의 ‘굿 모닝’을 위해 깨어나는 이 땅 모든 ‘굿 모닝’은 슬픈 인사라고. 그런 피의 ‘모닝’을 타고 일터로 가야 하는 우리의 아침이 참담하다고. 이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 안녕할 것인가. 눈물이 난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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