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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01 20:20 수정 : 2010.10.01 20:21

교사는 교과서를 선택할 때 ‘3배수 추천’밖에 역할이 없다
교과와 관계없는 학교운영위원이 최종 결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지금 중고등학교에서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라 발행된 검정 교과서 선정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런데 시도 교육청에서 내려온 ‘검정도서 선정 지침’을 놓고 매우 퇴행적이라는 말이 많다.

검정 교과서 한 권이 수업 자료로 채택되는 과정을 보자. 먼저 정부에서 ‘교육과정’을 만든 뒤에 ‘교과서 집필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면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 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만들어서 정부에 심사를 요청한다. 정부에서는 출판사에서 만든 교과서들을 놓고 심사를 한 뒤, 교재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교과서들을 대상으로 일부 수정 절차를 거친 뒤 최종적으로 검정 승인을 한다. 이렇게 검정 절차를 거친 교과서들이 학교로 전달되면 학교에서는 선정 절차를 밟게 된다. 우선 일정 기간 교과서를 공개 전시하고 검토하게 한다. 교과 담당 교사들은 개인별 채점표를 작성하고 이를 취합하여 순위를 매긴 뒤, 이 중 1, 2, 3위 후보 교과서에 대해 추천 사유를 밝혀 학교운영위원회에 추천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추천된 내용을 심의한 뒤 다시 순위를 정하여 학교장에게 심의의견서를 제출하고, 학교장이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여 교과서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며, 그 배후에는 교과서를 보는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교과서는 교육 목표가 아니라 교육 자료일 뿐이다. 이는 7차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에 명시해 놓은 사실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교과 교육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이며,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수업 자료 중에서 좀더 비중이 큰 자료일 뿐이다. 수업 자료를 누가 선택할 것인가.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고자 하는 대상과 목표에 더 적절한 교재를 선택하는 것은 상식이다. 국가의 검정을 거쳤기 때문에 어느 교재를 택하든 교재로서의 자격은 모두 갖추었다고 봐야 하며, 다만 가르칠 교사가 학생들의 상황이라든가 자신의 수업 방식 등을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교과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사는 3배수를 추천하는 것으로 역할이 끝난다. 교과와 아무 관계도 없는 학교운영위원들이 3배수 추천된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과목 교사가 3인 미만일 때는 인근 학교 교사들을 선정 작업에 참여시키라고 한다. 이런 조치는 검토 대상 교과서들이 국가의 검정 과정을 거쳤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교육청의 지침 자체가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선정기준, 선정절차 등의 타당성 등을 심의’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부조리를 예방하기 위해 선정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내용이 아니라 절차의 타당성을 심의하는 것이라면 왜 3배수를 추천해야 하는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다시 추천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 부분에서 얼마 전에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역사 교과서 파동’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좋은 교과서라고 평가해도 마음에 안 들면 운영위원회나 학교장 선에서 교과서를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일상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언제든 이 장치는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발행제 상황이 아니라 국가에서 검정한 교과서를 채택하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내용에 대해서는 교사에게 맡겨 두는 것이 누가 봐도 옳은 일이 아닐까.

고용우 울산제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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