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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14 17:57 수정 : 2010.09.14 17:57

공정성과 타당성, 그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선할 수는 없다
둘은 함께 조화해서 가야 한다
행시개혁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고시제도는 상대적인 차원에서 공정할지 모르지만 원론적인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공정한 제도는 아니다. 행정고시 준비생은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가까이의 시간을 생계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해야 한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줄줄이 있는 저소득층 가구의 구성원은 ‘장기전’인 고시를 꿈도 못 꾼다. 행정고시 합격자 중 소위 명문대 출신 학생의 비율은 70%를 상회한다. 이 중 약 40%가 서울대 출신이다. 행시가 명문대 음서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명문대 진학 비율과 부모의 경제력이 비례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고시제도의 공정성 또한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한발 물러서 그래도 다른 시험에 비해 ‘상대적 공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해도, ‘사후적 공정성’이 남는다. 암기만 해서 시험에 패스하면 평생 경쟁이나 자기계발 없는 고위직으로의 ‘출세길’을 인정받는다. 한번의 성공이 과도한 보상을 낳는 것이다. 고시낭인 양산의 문제도 적지 않다. 올해만 327명 모집에 1만4695명이 지원했다. 젊은 인력의 국가적 손실이 상당하다. 결국 고시축소 반대진영에서 주장하는 ‘계층이동사다리’ 공식에는 오류가 많은 셈이다. 사다리에 근접도 못 하는 사람, 사다리에 올라탔다 떨어지는 수만명의 낙오자, 한번 사다리를 잘 건너가 과도한 보상을 받는 사람에 대한 ‘공정성’과 ‘타당성’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가 추진한 5급 공채제도는 고시제도에 비해 ‘타당성’과 ‘공정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제도다. 전문성을 겸비한 민간인이 공직에 진출함으로 인해서 공직사회에 긴장과 경쟁을 불러오고 행정서비스의 효율도 보장할 수 있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사실 논란이 된 유명환 사태는 5급 공채로 일어난 채용 특혜가 아니라 현행 고시제도하에 진행중인 ‘특채’ 선발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다. 특채는 공개채용이 아닌 수시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부서간에 산발적으로 진행된다. 5급 전문가 공채는 이러한 특채가 가질 수 있는 채용과정의 불공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류 면접 등 지극히 단순한 방식의 채용과정이 공정성 시비를 불러온다면 심층역량이나 아이디어 개발, 정책 설계, 발표, 집단 토론 등 평가과정을 보완하면 된다. 행안부는 농어민 후계자나 사회복지시설 근무자, 중소기업 근무자 등의 인력을 다원화되는 행정 수요에 맞게 선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권층을 위한 채용이 아니란 얘기다. 또한 이번 개편안은 사법고시나 외무고시처럼 필기시험 위주의 고시제도의 ‘전면적 폐지’가 아니라 ‘축소’다. 필기시험 채용과 전문가 채용 비중을 2012년까지 각각 절반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공무원 채용과정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적정하게 수렴한 비율이라 볼 수 있어 합리적이다.

제도는 공정성과 타당성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함께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바람직하다.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선한다는 프레임을 걸어놓고 하나를 폐기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제도의 발전과 보완은 요원하다. 졸속 추진으로 꼴사납게 끝났지만 행시개혁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구채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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