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07 20:13
수정 : 2010.09.07 20:13
놀 시간도, 놀 공간도 없다
주변이 스트레스 투성이다
집에서나마 뛰놀아야 하는데
이웃들의 시선이 너무 따갑다
며칠 전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안내문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는 집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윗집이 밤 12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한밤중 또는 새벽에 쿵쿵거리는 소리에 자다가 깬 적이 많다. 안내문 또는 권고문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뛰기 때문에 아랫집에 피해를 많이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부녀회보다 노인정 어르신들의 파워가 더 세다. 여름이면 배드민턴장이 고추 말리는 곳으로 둔갑을 하기도 한다. 햇볕 좋은 곳에서 고추를 말리고픈 그분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가뜩이나 뛰어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이 방학이라고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하는 곳인데, 행여나 고추가 상할세라 아이들을 야단치시니 아이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고추 말리기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때로 더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려는 욕심 때문에 자리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들은 이제 아이들을 안 키우신다고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울려 힘들어 죽겠다고 울상을 지으신다. 당신들이 자라던 때, 아니 40살이 넘은 내가 자라던 때도 공동주택이 거의 없었으니 어렸을 때 뛰지 말라는 소리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그때와 너무나 다르다. 지금은 공동주택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일 것이다. 우리 큰아이는 조용한 편이라 별로 주의를 준 적이 없지만 그 밑의 아들 녀석은 뛰어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파고 식탁이고 뛰어내리는 것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아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다행히 좋은 이웃을 만나 제지를 당하거나 가슴 아픈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주변에서 아이가 살짝만 뛰어도 아랫집에서 바로 올라오거나 인터폰으로 야단을 쳐서 견디다 못해 이사를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많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 8시만 되면 아이가 뛰는 것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 그렇게 걱정이 될 정도로 뛰어다니지는 않지만 아직도 하루에 두어번은 뛰지 말라고 아랫집에서 올라오면 네가 나가서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고 협박을 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굴레 속에서 허덕이며 놀 시간도 별로 없고 놀 공간도 별로 없다. 주변이 스트레스 투성이다. 이 아이들이 집에서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공동주택에 살면서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내 아이가 다 컸다고 우리 집은 조용한데 너네 집은 너무 시끄럽다고 아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너무 잔인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르신들의 자녀가 결혼하여 손주가 놀러와 뛰어논다면 그때도 호통치실 수 있을까?
아이는 아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아랫집 어른들은 윗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면 야단치는 대신 ‘너희들 참 씩씩하더라’라고 해주시고, 아이들과 그 부모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조심하면서 이웃관계가 더 좋아지는 때를 기다려 본다.
김효숙 인천 부평구 부개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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