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15 23:23
수정 : 2010.08.15 23:23
7·28 이후 지지율 상승 자신감에
역대 최악 친위내각이 출범했다
‘정치적 선택에 대한 내발적
책임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충격적 활약상을 다룬 저작이다. 이 책에 1997년 12월 시작된 우리나라 외환위기 사태 이야기가 나온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대한민국에 밀어닥친 외환위기가 미국과 그 대리인인 국제통화기금(IMF)이 치밀하게 계획한 강탈행위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내게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우리 책임은 없었나?”
필자가 경험한 아이엠에프 직전 시기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었다. 홍수처럼 불어나는 순익을 주주들에게 전부 되돌리기 미안했던지, 많은 기업들이 직원 해외연수와 보너스 세례를 퍼부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궤멸적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그 짧았던 초호황 국면은 대책 없이 차입한 외국자본 위에서 흥청망청했던 빚잔치의 신기루였다. 클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이엠에프 사태를 초래한 ‘내발적 책임론’에 더 큰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믿는다. 정책당국의 무책임, 확장 일변도로 치달은 재벌의 탐욕 등 위기를 초래한 근원적 변수가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7·28 재보궐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또다시 50%를 육박한다는 소식이다. 그러한 자신감에 힘입어 역대 최악의 친위내각이 출범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쌍둥이처럼 ‘정치적 선택에 대한 내발적 책임론’을 떠올리게 된다. 출범 초기부터 대두된 이른바 ‘강부자 논란’은, 현 정권이 기득권 계급의 경제권력 독식을 목표로 하는 태생적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뚜렷한 징표다. 이후 급속히 진행된 부유층 감세, 복지예산 축소, 노동유연화 정책이 이를 확고히 증명한다. 그럼에도 어찌 이렇게 높은 대중적 지지가 나오는 것일까?
계급 배반 투표란 사회적 취약계층이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행태를 말한다. 6월 지방선거에서 잠시 수그러들었던 이런 흐름이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두고 여러 해석이 등장한다. 우선 민주당을 비롯한 대안적 정치세력의 무능력론이다. 청와대에 포진한 핵심 정치홍보 참모, 이른바 스핀닥터들의 서민지향 쇼가 먹혀들어간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원인은 좀더 근본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부자 되세요!”라는 기만적 슬로건이 한때 왜 그리 유행했을까를 생각해보라. 결국 중산층 몰락으로 귀결될 뿐인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나홀로 신분 상승’의 환상이 사람들 마음속에 유령처럼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2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소득분배 악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중인 나라의 기층 대중들이 스스로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대선 예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통일·민권 전 분야에서 자기 발밑의 흙을 무너뜨리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자신을 찌르려는 자의 손에 기꺼이 칼을 쥐여주는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문호 루쉰이 <아큐정전>을 발표한 지 벌써 90여년이 지났다. 왜곡된 사회구조의 시퍼런 칼날이 심장을 베고 있음에도 왜 이리 고통스러운지 까닭조차 모르고 죽어간 사람. 나는 요즘 그의 얼굴 위에 우리 얼굴이 겹쳐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
김동규 동명대 언론영상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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