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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3 20:21 수정 : 2010.08.13 20:21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사건 수사 결과 발표는 사찰보다 더 공포감을 준다. 검찰에서 한달이나 총력수사를 했는데도 이 불법적 사찰이 왜,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으니 그렇다.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익명의 제보’가 사건의 몸통이다. ‘익명의 제보’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하루아침에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일본 총리가 한-일 병합 100주년에 발표한 담화문은 ‘사죄한다’면서 식민지배가 우리 민족의 뜻에 반하여 일어났다는 것을 밝혀 ‘진일보’했다고들 말하지만, 예전의 사과와 견줄 때 근원적으로는 도긴개긴이다. 한-일 강제병합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선언은 유보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몸통’은 그대로 놔두고 말로만 번지르르 페인트칠한 셈이니, 우리는 여전히 일본제국주의 부활에 대한 두려움을 버릴 수 없다.

태풍이 몰아치고, 북한은 남쪽 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쏘고, 부패한 시신이 살림집 침대 밑에서 발견되고, 사랑한다면서 남자가 여자를 칼로 찌르고, 택시기사가 차 안에서 죽고, 믿고 탄 천연가스버스가 폭발해 멀쩡한 처녀의 두 발이 날아간다. 모두 최근에 생긴 일이다. 왜 그랬는지 그것들의 근본적인 이유 또한 오리무중이다. 내게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역시 무섭다.

이런 공포감은 나의 과오에 의해서 비롯된 게 아니므로 정말 처치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이 공포감에서 해방될 길이 없다는 게 오늘 우리네 삶의 문제이다. 나 혼자 ‘삶의 창’을 아무리 닦아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근원에 대한 무지가 공포감을 가져온다. 원인에 대해 명확히 안다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으려니와, 대책을 통해 앞날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공포감은 완화된다.

주로 경제용어로 사용되는 리스크(risk)의 어원을 살피면 ‘항해도가 없는 항해’라는 뜻에 닿는다. ‘미지의 공간’이라는 뜻도 된다. 공포감은 지도를 갖고 있지 않은 자가 느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속수무책의 정서적 반응인바, 한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적 시스템은 당연히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에 의하지 않은 이유로 받아야 하는 불안과 공포감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절대빈곤의 시대를 지나왔으니 더욱 그러하다. 절대빈곤의 극복이 곧 절대불안을 낳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리스크’가 아닐 수 없으며, 그 리스크는 개인보다 당연히 나라가 먼저 떠안아야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의 과오에 의한 불안이 아니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근원적으로는 맞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수익성이 높은 투자는 안정성을 해치고 안정성을 선택하면 수익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 수익성과 안정성이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대수익률을 과도하게 두면 당연히 리스크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이는 계속해서 불안과 공포심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불안과 공포심의 ‘몸통’은 과도하게 설정한 기대수익률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껴안고 사는 불안과 공포심도 근원은 거기 있다. 나라가 앞장서 기대수익률을 자꾸 높이고 국민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것에 따라 개인적 기대수익률을 자꾸 높인 결과가 가져오는 리스크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가 이를테면 투표권을 행사할 때, 우리는 그들을 매개 삼아 터무니없이 높은 기대수익률을 설정하진 않았던가, 생각해볼 일이다.

행복을 수익률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처럼 계속 학습해야 한다면 ‘삶의 창’은 아무리 닦아도 맑아지지 않는다. 우주에는 1000억개가 넘는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에만 수천억개의 별이 있다. 지구는 우주의 아주 작은 변방에 불과하다.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약 1억2800만㎢. 60억 인구로 나누면 일인당 겨우 0.02㎢를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도 오로지 높은 기대수익률만을 좇아 불안과 공포심을 평생 견디면서 살겠는가.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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