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13 18:36
수정 : 2010.08.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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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용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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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아직 떠나지 않은 분들에게 ‘숲길 느리게 걷기’를 권해드린다. 걷기에 따른 운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 특히 날로 난폭해지고 있는 청소년의 심성을 다듬는 데에도 좋다.
1938년 <조선의 임수>라는 책에는 모두 141개의 마을숲이 나온다. 그중 3분의 2는 파괴되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새로운 고목숲을 개발하거나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여 새로 얼굴을 보이는 숲도 생겨난다. 지난 10여년 동안 100여개의 고목숲을 소개했는데,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숲이 100여개는 충분히 더 남아 있다. 건축이나 경치를 보러 해외여행만을 고집하는 것은 걸을 만한 숲길을 소개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걷기에 좋은 숲 가운데 첫손을 꼽으라면, 전남 장성의 편백숲을 추천한다. 장성 편백숲에는 나무가 뿜어내는 천연항생제로 알려진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장성의 축령산 외에도 여러 군데 편백숲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결과, 장성 편백숲에는 천식을 유발하는 곰팡이에 대하여 항균 효과가 있는 사비넨이란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이곳 공기는 강원도 소나무숲보다 피톤치드 농도가 53% 많다. 인간에게 정신적 물리적 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말이다. 여러 곳의 편백숲을 셔틀버스가 다니면서 숲만을 산책하게 하는 방안을 장성군은 강구하기 바란다. 숲을 매개로 한 관광을 시도하는 곳이 한군데도 없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둘째로 피톤치드가 많은 숲은 잣나무숲인데 가평이 으뜸이다. 경기도 소유의 잣나무숲과 연인산 중턱의 잣나무숲은 70년 이상 된 아름답고 멋진 숲길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산기슭보다 산 중턱에 있어서 다리품을 꽤 팔아야 접근할 수 있다.
접근하기 쉬운 산 밑의 고목숲에는 문화적인 요소가 많은 숲들이 아직 건재하다. 역사적인 불교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으므로 절 주변의 숲은 보전이 잘되어 있고 접근하기도 쉽다.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주변 입구에는 넓은 면적의 숲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숲,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오리숲 등이지만 고목들은 점점 쇠퇴하고 있어 특별한 조처가 없는 한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나무는 생명체이므로 수명이 유한하다. 그러나 관리 정도에 따라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인간이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은 왕릉 주변의 숲이다. 수도권의 서오릉, 동구릉, 홍릉, 영릉, 경주의 삼릉, 계림 그리고 왕의 조상묘인 삼척 영경묘, 준경묘 근처의 숲은 대부분 소나무나 참나무류로서 보전이 비교적 잘되어 있다. 능과 능을 연결한 숲길을 가는 것은 사람들이 많더라도 걷기에 훌륭한 숲길이다. 조상의 지혜를 느끼고 느긋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으니 아마 일석사조쯤 될 듯싶다.
다음은 마을숲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허한 기를 막으려고 조성하든지, 홍수나 바람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유서 깊은 숲들이 마을 주변에 산재해 있다. 개발에 밀려 없어진 곳도 바로 마을숲이고 기존의 숲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우리의 숲길은 외국인에게도 자랑할 만한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오는 23~2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3차 세계산림과학대회’에 참가한 110여개국 산림 관련 정부 각료와 학자 등 외국인 2500여명이 오대산, 설악산, 광릉수목원 등 8개 코스의 숲길을 하루 동안 걷는 체험행사를 한다. 우리의 숲길이 세계인들에게도 사랑받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이천용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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