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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0 23:52 수정 : 2010.08.10 23:52

농부들만의 마을은 불완전하다
여러 부류가 어울려야 한다
농사짓지 않고도 당당히
귀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시의 많은 소시민들은 도시라는 아사리판을 벗어나고 싶다. 현대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가 건설한 잿빛 난민촌을 탈출하고 싶다. 그 뿌리 깊은 구조악의 굴레에서 헤어나고 싶다. 가진 것 다 내려놓고 자발적 유배라도 떠나고 싶다. 어서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 행세를 하고 싶다. 귀농하고 싶다.

하지만 농사는 고되다. 농업은 간단하지 않다. 생활이란 모진 현실은 귀농인이 하방한 마을까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무가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먹고사는 데 진력하느라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보살피는 인간의 기본적 품격이나 예의조차 챙기기 버거울 때가 적지 않다. 마음보다 몸이 저지르는 짓들이라는 변명을 상비하고 살지만 대놓고 둘러대기는 부끄럽다.

무엇보다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 자신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날마다 땀 흘리며 배우고 익히지만 공부와 일은 역시 다르다. 날로 돈은 떨어지고 힘은 빠지게 마련이다. 젊은 날의 용기와 지혜마저 옅어지고 흩어진다. 귀농의 앞날이 불안해진다.

이럴 때, 방법이 있다. 어설픈 낫과 호미를 잠시 내려놓고 저마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용케 버티면서 챙겨둔 생활의 농기구를 두 손에 꺼내드는 것이다. 치열한 도시의 직업전선에서 갈고닦은 경험, 기술, 노하우, 지식정보 같은 빛나는 무형자산을 무기 삼는 것이다. 이 생활의 무기들만 잘 챙겨 짐을 꾸리면 외지인이나 주변인이 아닌 권리와 책임의 주체인 ‘마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 비로소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생활귀농’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농부들만 모여 사는 마을은 온전하지 않다. 불완전하다. 다채롭지 않다. 마을을 유기적인 생명체로 본다면 건강할 수도 없다. 사람 사는 재미도 덜하다. 우선 교육을 세우는 교육시민부터 마을에 필요하다. 서로를 깨우치는 대안학교 교사, 자연을 가르치는 농산촌유학 활동가, 몸으로 겪게 하는 체험농장 강사 등이다. 문화를 만드는 문화시민도 함께 어울려야 한다. 놀이로 하나 되는 문화예술인, 생활을 창조하는 공예가, 세상을 쓰고 짓는 작가를 사례로 들 수 있다. 기업형 농사를 짓는 농업회사원, 고부가를 창출하는 농식품가공 사업자, 직거래 소통하는 농산물유통상은 마을의 농업 지킴이다. 농촌을 꾸리는 농촌시민은 마을의 일꾼이다. 마을을 보살피는 마을사무장, 마을을 기록하는 마을조사원, 마을을 계획하는 마을 컨설턴트들이 마을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환경을 가꾸는 환경시민인 따뜻한 집을 짓는 생태건축가, 편안한 안식 주는 생태쉼터 운영자들도 마을을 이루는 시민들이다. 이처럼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농부는 물론, 교사, 예술인, 연구원, 작가, 운동가, 성직자, 기업가, 기술자, 상인이 한데 어우러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마을은 우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져 짐이 되는 욕심과 욕망들을, 서로 다른 우리끼리 나누고 덜어줄 수 있게 된다. 마침내 평화롭고 행복한 대동사회가 이루어진다.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으로, 소시민이나 농민이 아닌 ‘마을시민’으로 사는 새 길이 열린다.

정기석 마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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