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8 20:48
수정 : 2010.08.08 20:48
다양한 배경·성격 가진 아이들
학교서 보듬을 수 있도록 해야
미국은 100여년 전부터 시행
복지를 빈곤의 잣대로만 보면 안돼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한사코 교실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아이 때문에 담임교사가 학교사회복지실로 도움을 요청해왔다.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살다가 부모와 함께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이는 부모와의 얕은 유대감으로 사방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곳저곳을 배회하기 일쑤이고 반 아이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손에 잡히는 물건들로 찌르고 위협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마네킹처럼 서서 씻기, 입기, 먹기 등 모든 것을 해달라 떼를 썼다.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감정조절이 안되는 아이, 또래와 어울리는 방법을 몰라 스스로 소외된 아이, 가정의 경제적 형편으로 꿈꾸기는 포기하는 아이, 자아 존중감이 부족하고 칭찬에 목마른 아이 등등. 부모의 소득 수준, 외벌이·맞벌이 가정, 그리고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 등 가정의 유형에 따라, 아이의 특성에 따라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다. 가정 안에서 아이와 부모가 가지고 있는 힘을 발견하는 데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다.
학교사회복지는 미국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학교사회복지사, 상담사, 심리학자와 함께 팀을 이뤄 학생의 인성과 복지를 담당하는 지원 체계가 구성돼 있다. 1990년대 이후 의무교육제도 시행과 맞물려 학교사회복지 제도가 확산되기 시작해 현재 서구 선진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몽골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현재 한국의 현실은 매우 다르다. 교육복지, 스타트사업, 민간기금사업, 지자체사업 등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학교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실시되지만 전국 초·중·고교의 5%에도 못 미친다. 학교사회복지사업이 2년간의 시범사업을 통해서 이미 높은 효과성을 확인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빈곤지역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유년기, 성장기의 다양한 어려움과 욕구는 빈곤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발달 단계상 모든 아이들이 겪는 문제이다. 그런 만큼 보편적으로 실시될 필요성이 있다.
발로 뛰는 만큼 아이들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사례별로 다르지만 보통 눈높이를 맞추고 관심을 쏟아주는 멘토를 연계하고, 멘토링 활동에서 발견한 아이의 긍정적인 면들을 부모, 담임교사에게 전달한다. 담임교사는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지역주민센터나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아이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되고, 부모에게는 아이의 치료와 양육을 함께 의논할 수 있도록 학부모 모임을 연계하기도 한다. 담임교사-부모-멘토와 함께하기를 거듭하면서, 교실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했던 아이가 6교시 수업도 거뜬히 소화하게 되고 같은 반 친구들과 자연히 어울리게 된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더딘 변화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방학에도 공부, 진로문제, 가정과 또래 내 문제 등 저마다의 고민과 씨름하며 힘든 여름을 나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사회복지=빈곤’이라는 잣대로 아이들의 삶과 복지를 제약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지 궁금하다.
박윤정 학교사회복지사·안산 별망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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