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16 22:35
수정 : 2010.07.16 22:35
출마자의 소견 발표도 없고
그냥 아무나 무기명으로 쓴다.
관례라는 이름으로 계속돼 온
교황식 선출 방식 바뀌어야 한다
회기가 시작된 날부터,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일주일간의 협상으로 파행을 겪은 경기도의회는 지난 13일, 드디어 의장단을 선출하고 개원을 했다. 하지만 진보신당 소속의 경기도의원인 나는, 비교섭단체의 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협상 과정의 참여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했고, 정작 의장단 선거 때는 ‘선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비상식적인 ‘교황식 선출 방식’으로 다시 한번 소외당했다.
‘교황식 선출 방식’이란, 출마 의사 표시와 소견 발표 없이 선거권자가 무기명으로 전체 구성원 중 한명을 골라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어 내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의회에서 의장단 선출 때 ‘관례’라는 이유만으로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의 기본은, 피선거권자가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정견을 알려 선거권자가 그것을 근거로 판단, 결정하는 것이다. 즉 공식적인 후보 등록과 후보의 정견 발표가 기본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도 적용되는 기초적인 원리인 것이다.
이에 반해 ‘교황식 선출 방식’은, 비공식적인 후보 내정과 함께 후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민주적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러한 방식은 의회 안에서 비교섭단체의 소수 의견을 전혀 반영할 수 없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양당간의 합의 내용도 모르고, 그 합의를 통해 내정된 의장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력도 전혀 모른 채 131명의 의원 중 한명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어야 하는 상황은 말 그대로 폭력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권표를 던진 것은, 나를 의원으로 뽑아준 도민들에게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먹구구식 선출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 표시였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대구서구의회와 전주시의회에서는 이번 의장단 선거를 ‘교황식 선출 방식’에서 ‘정상적’인 선출 방식으로 바꾸어냈다는 것이다. 대구서구의회는 이미 지난 3월에 규칙과 조례를 개정하여 이번 의장단 선거부터 후보등록과 10분 소견 발표의 절차를 거쳐 투표를 진행했다. ‘관례’라는 미명하에 ‘줄서기’, ‘의원 빼가기’, ‘자리 보장’ 등의 부끄러운 행태들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의회 정신을 실현한 것이다.
이번에 의회에 들어가 ‘교황식 투표’에 참여하신 여러 의원들께 제안드린다. ‘교황식 선출 방식’의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최소한 후보등록제와 10분 정견 발표제를 보장할 수 있는 규칙 및 조례를 개정하자. 그래서 하반기에 의장단을 선출할 때에는 ‘나쁜 관례’가 아닌 ‘좋은 선례’를 남겨 우리나라 의회 민주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데 앞장서자. 반장 선거 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회를 만들어보자.
최재연 경기도의원·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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