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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7 17:21 수정 : 2005.06.17 17:21

두 제도 시행에 앞서 고등교육기관과 교육 관련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폭넓은 의견수렴의 절차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 획일적 밀어붙이기식 탁상행정의 발로에서 나온다면 아무리 훌륭한 취지의 제도라 해도 적지않은 반발이 뒤따른다.

6월4일과 10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정보 공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과 ‘고등교육 평가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예고했다. 양질의 교육을 촉진하기 위한 대학정보 공시제도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전국 4년제 대학과 2~3년제 전문대학에 대한 평가를 전담하게 될 ‘한국고등교육평가원’도 내년 상반기 출범한다.

대학이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시해야 할 주요 항목은 교지 및 교원 확보율, 신입생 충원율, 취업율, 재정 현황 등이다. 1조8019억여원에 달하는 정부의 재정지원의 토대가 될 대학과 전문대 평가 항목은 교육 및 연구수준 평가, 학부(학과)와 전문대학원 평가, 특성화 사업 평가로 이뤄진다.

대학정보 공시제와 대학평가가 시행되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학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또한 대학 사이 경쟁이 강화되면서 각 대학은 교육 및 연구 여건 향상 노력과 특성화 사업 박차 등 대학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제도 도입은 대학별로 극명한 서열화를 조장하며, 이에 따라 해당 대학들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된다. 대학의 양적 질적 평가 결과가 공시됨으로써 무차별적인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면 고등교육기관의 경쟁력 강화라는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거센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월 2009년까지 대학·산업대·전문대 등 347곳 가운데 87곳을 통폐합하는 것을 뼈대로 한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확정해 발표한 바 있다. 정원 감축과 사립재단의 퇴출 경로 규정 등 개혁의 깃발을 흔들고 개혁의 칼을 빼든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막대한 예산을 볼모로 대학정보 공시제와 대학평가를 시행하여 대학을 전방위로 압박한다면 살아남을 대학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평가결과에 따라 정원 감축이 대학 재정수지 악화로 이어지면 상당수 대학이 문을 닫게 된다. 지방대학 특히 전문대학 158곳의 경우엔 자칫 공멸할 수도 있다. 올해 모집정원 26만6002명의 17.7%인 4만7083명이 충원되지 않았던 전문대학은 급감하는 학령인구를 고려하면 내년 입시에서 서울 시내를 포함해 전국적인 대규모 미충원 발생이라는 참담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4년제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대학정보 공시제 시행에 따른 취업률 공개는 수험생들이 희망 대학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각 대학은 취업률 높이기에 특단의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이럴 경우 대학의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고사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주지하다시피 인문학과 기초학문 전공 학생들의 취업은 쉽지 않다. 대학은 이들 관련학과를 구조조정의 우선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학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연하게 되고 이는 불행히도 학문의 왜곡 현상을 낳게 된다.

부실한 재정구조, 교원 1인당 대학생수 46명의 ‘콩나물 교실’화, 지난해 5명 중 1명꼴인 20.1%의 휴학생 비율, 구조조정 광풍 등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비상사태와 다를 게 없다. 2006 학년도 입시에서 최악의 ‘지진해일’이 덮치기 전에 모든 대학은 제로섬 게임과 정글의 법칙에서 살아 남기 위한 확고한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21세기 격동의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 대학이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도 분명하다.

그러나 두 제도 시행에 앞서 고등교육기관과 교육 관련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 또한 공시 내용과 평가 항목에 중도 탈락률과 학생 및 산업체 만족도 등 객관적인 질적 지표를 삽입하여 교육 수요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으면 대학정보 공시제와 대학평가 시행은 탄력을 받는다. 어떤 제도이든 획일적 밀어붙이기식 탁상행정에서 나온다면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취지의 제도라 해도 적잖은 반발이 뒤따른다.

고재경/배화여대 교수·2부교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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