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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3 20:54 수정 : 2010.07.13 20:54

이번 실용정부를 한마디로 재정의한다면 ‘퇴행의 정부’라고 할 만하다. 정부의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이 더 이상 놀라운 것도 아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민주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아직도 ‘국가’와 ‘발전’이라는 보수적 담론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은 비단 정부와 집권여당의 고위층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 민주화되었다면 과연 지도층 일부가 퇴행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처럼 이렇게 민주주의가 흔들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87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절차의 영역에 불과하다. 굳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등의 가치를 따지는 실질적 민주주의 논의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 생활 속의 비민주적 요소를 하나둘 살펴보면 이러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지난해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법정모니터링을 십여 차례 한 경험이 있었다. 상세한 재판 심리문제야 모니터 요원이 알 수 없는 부분이므로 필자는 재판이 과연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지에 주목하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일단 재판관과 다른 사람들이 위치한 물리적 위치에서부터 큰 차이가 났다. 어떤 법정이든 어김없이 판사들은 높은 곳에서 앉아 아래를 굽어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위축된 피고인이나 아쉬운 변호사들은 고개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앉아서 진술하는 경우도 거의 보지 못했다. 서울남부지법의 한 법정은 아예 판사 얼굴 앞에 모니터 같은 것이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 가리개 덕분인지 그 재판에서 재판관 3명 중 한명은 졸고 있었다. 왜 재판관이 더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하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얼굴조차 잘 볼 수 없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법관이 있을까?

또 판사들이 들어올 때는 어김없이 양복 입은 직원이 뭐라고 큰소리로 구령을 붙인다. 그때는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황급히 일어나서 인사해야 한다. 마치 군대에서 지휘관이 막사에 들어올 때 “충성” 하고 외치는 분대장과 병사들을 보는 듯했다. 굳이 서울동부지법에서 소지품 수색을 당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 법원이 아직도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법정에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어디를 보나 비민주적인 요소들이 과거의 잔재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민주적인 검찰과 경찰, 민주적인 교사, 민주적인 공무원, 민주적인 기업인, 민주적인 노조원, 민주적인 언론인….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과연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위협받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대착오적인 정치인들 때문이 아니라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 속 비민주적 관습들이 아직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87년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그 민주화는 ‘섬’에 갇혀 있다.

진짜 민주주의는 아주 소소한 우리 생활 속에서부터 출발함을 잊지 말자. 굵직굵직한 큰 문제에 대해서 분노하고 반대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주변의 작은 민주주의를 달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시민단체들도 커다란 이슈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이런 생활 속의 작은 문제들부터 고민해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영석 한양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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