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2 18:37
수정 : 2010.06.22 18:37
끊임없는 코리아 풀 파기,
엄청난 중계권 부풀리기
스포츠 중계 방송사도
‘국가대표’ 자격이 있어야 한다
남아공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놓고 벌어진 방송사간 다툼이다. <에스비에스>(SBS)는 동계올림픽에 이어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독점 중계를 맡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 조처에 따라 열린 월드컵 중계권 재판매 협상도 최종 결렬됐다. 중계권을 선점한 에스비에스는 자사 뉴스를 통해 단독 중계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국민들 역시 불가피하게 에스비에스를 통해 남아공월드컵을 시청해야 한다. 코리아 풀을 파기하고 재협상까지 결렬시킨 에스비에스를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에스비에스뿐만이 아니다. 1996년 이래 지상파 3사는 서로 돌아가면서 풀을 파기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문화방송>(MBC)이 풀을 깼으며, 2006년에는 <한국방송>(KBS)이 스포츠 마케팅 사업자인 아이비(IB)스포츠로부터 중계권을 사들여 독점 중계했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엄청난 외화낭비이다. 월드컵 중계권을 놓친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은 앞으로 단합하여 에스비에스를 배제할 수 있고, 또한 각 방송사가 중계권을 잡기 위해 높은 입찰을 함으로써 외화낭비를 할 수 있다.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중계권 부풀리기가 필요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중계료 인상을 위해 각국 방송사들의 경쟁을 유도한다. 한국 방송사들은 이기심 때문에 순진하게 꾐에 걸려든 셈이다.
중계권 독점은 기본적인 시장논리도 훼손한다. 독점 중계권을 획득한 방송사는 막대한 투자를 한 만큼 본전을 뽑으려 노력한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의 중계권을 쥐고 있으니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기도 쉽다. 에스비에스는 이미 일부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 광고를 경기 중계와 함께 패키지로 판매해 문제를 일으켰다.
조정이 필요한 곳은 중계권 선정뿐만이 아니다. 각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경기를 중계하면서, 스포츠 경기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이 훼손되고 있다. 일본은 공영방송인 엔에이치케이(NHK)와 5개 민영방송이 가입한 재팬컨소시엄(JC)을 통해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협상이 이뤄진다. 각 방송사는 재팬컨소시엄을 통해 방송권을 확보하고 방송권료 부담 비율에 따라 중복 편성 없이 경기를 배분한다. 방송사들은 중계할 경기를 추첨을 통해 정한다.
중계 협상으로 국부 유출을 막고, 순차 중계로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상대에 대한 신뢰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규칙이 있어도, 이익 앞에서 서슴없이 약속을 저버린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지상파 3사는 국민의 언로를 담당하는 대표 방송국이다. 대표 방송국이라면 협상 이행과 공정거래라는 기본적인 룰은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만큼이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 역시 국가대표 자격이 있어야 하겠다.
최민정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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