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의 보호감호제는
삼권분립의 균형을 허문다
또한 누구에게만 적용되어
위력 발휘할지는 뻔하다 각종 흉악 범죄가 방송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눈길이 가는 대책은 보호감호제의 부활이다. 보호감호제는 사법부가 정한 형량을 다 마쳤어도 정부가 제공하는 별도의 교화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 사회에서 더 격리되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이 기간은 정부가 정한다. 보호감호제는 이중처벌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죄수들이 수감되는 교도소의 목적이 바로 교도(敎導)인데 법원이 정한 교도소에서의 교화 프로그램을 다 이수한 죄수가 정부에서 제공하는 또다른 교화 프로그램으로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중처벌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제공하는 교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사실상 교도소에서 있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단순한 ‘격리 기간의 연장’이다. 보호감호제는 행정부에 형벌권을 부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보호감호제라는 또다른 형벌권을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가지게 된다면,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법적인 판단을 하고, 형벌을 내리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사법부의 감시와 형벌권의 행사에 의해 견제된다. 행정부 역시 형벌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균형은 허물어진다. 정부는 보호감호제의 시행보다 현재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교화 프로그램을 선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법부가 정한 격리 기간 동안 죄수들이 양질의 교화 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면 굳이 보호감호제를 시행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보호감호제가 시행돼도 제대로 기능할지 의문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횡령하는 대기업 경영진들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긁어모으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집행 유예를 선고받고 길거리를 활보한다. 심한 경우는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주는 현 시점에서 보호감호제가 과연 ‘누구에게만’ 적용되어 위력을 발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김대영 서울 광진구 화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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