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우파 말만 들으면 “또 일이 터지겠구나”
오로지 힘없는 백성 위한 ‘사람파’가
득세하는 세상을 원한다 날로 복잡한 세상이 좌파 때문에 더 시끄럽다. 아니 좌파 때문이 아니고 좌파란 말 때문인 듯하다. 고약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좌파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니 좌파가 얼마나 안 좋은지 짐작은 간다. 지난해 어느 날 지쳐 가는 ‘용산참사’ 현장에 갑자기 나타나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한 스님이 있었다. “아이고 저 스님 누군지는 몰라도 앞으로 신상에 이롭지 못하지 ….” 뉴스를 보면서 속으로 예측했던 나는 그 뒤 그이가 누구인지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좌파 딱지’를 받았다며 곤혹스러워하는 어느 스님이 그때 그 스님이란다. 나는 좌파가 나쁜 것인지 우파가 나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좌파 또는 우파란 말을 자주 들으면 막연히 불안해진다. “아, 또 무슨 일이 터지겠구나” 하고. 좌와 우, 우리는 일상에서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다 중요하다. 걷거나 달릴 때도 좌우 손발이 쉴 새 없이 교대하며 조화를 이룬다. 나는 어렸을 적에 오른쪽 귀 중이염을 앓은 뒤 청력을 잃어 왼쪽 귀로만 들을 수 있어 곤욕을 치를 때가 많다. 무슨 엉뚱하고 유치한 얘기냐고? 더 엉뚱한 얘기도 있다. “군대도 안 간 사람이 군대 갔다 온 사람보고 좌파라 한다”고 했단다. 여러 가지로 헷갈리게 하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사실이라면 ‘좌파 딱지’에 대한 응답으로는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 편 가르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내 안경으로 보면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일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도 좌파 성향이 짙다. 하나 우파인 듯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니 우파인 듯도 싶다. 우리 역사상 좌와 우를 가장 따졌던 시기는 아마 한국전쟁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툭하면 좌우로 분별했고, 좌가 뭔지 우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한쪽을 택해야 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좌파 딱지가 붙기도 하고, 우파로 내몰리기도 하였다. 본의 아니게 좌파 딱지에 죽고, 우파로 몰려 죽기도 했다. 그야말로 동족 간에 가장 큰 환란이었다. 최근에 가슴 뜨거운 얘기 몇 편이 전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한림면장이었던 최대성씨. 창고에 갇힌 보도연맹원 100여명, 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최 면장이 경찰의 학살을 적극적으로 막고 나선 덕택이었다. 최 면장은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시 한림면 대한청년단장이던 동생 대홍씨를 통해 다시 경찰을 설득했다.(<한겨레> 2009년 2월24일치) 구례경찰서 안종삼 서장은 구례경찰서에 극렬 좌익으로 인정되어 구금된 보도연맹원 480여명을 석방해줬다. “여러분을 모두 방면한다. 내가 반역으로 몰려 죽을지 모르지만, 혹시 죽으면 내 혼이 각자 가슴에 들어가 지킬 것이니 새사람이 돼 달라”는 연설과 함께.(<한겨레> 2009년 10월20일치) 이 얘기에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그들은 그들의 백성에 관한 한, 상부의 지시 이행 이전에 목민으로서 상식과 양심, 그리고 백성의 목숨이 더 우선이었다. 그들에게 좌파란 무엇이고 우파란 무었이었을까? 그들은 아마 좌가 뭔지 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파’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힘없는 자기 백성들 위한 뜨거운 가슴과 숭고한 영혼을 가진 ‘사람파’였던 것은 틀림없다. 이제는 우리도 좌·우파가 득세하는 세상보다는 힘없는 백성을 위한 ‘사람파’가 득세하는 세상을 원한다. 힘 있는 분들에겐 ‘개검’이 있고 ‘떡검’도 있단다. 더러는 저울을 던진 정의의 여신 디케들이 다 알아서 한단다. 요즘은 신도 누추한 남일당 미사보다는 부자동네 성전의 예배에만 더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으신지. 정병길 경기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