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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4 20:21 수정 : 2010.04.14 20:21





전 정권과 현 정권에 제시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영향력
법을 바꾸고 정책 쥐락펴락
국민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싱크탱크. 아직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딱딱한 사전을 뒤지기보다 싱크탱크가 현실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1800개가 넘는 싱크탱크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 헤리티지재단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 뒤 일주일 만에 <리더십을 위한 지침>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정권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 250여명의 학자를 동원해 만든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훗날 레이거노믹스로 명명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비롯해 레이건 정부의 주요 정책이 망라돼 있다. 레이건 정부 집권 8년 동안 이 보고서 내용의 약 60%가 실행에 옮겨졌다.

# 부시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미국기업연구소는 뿌리가 같은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와 함께 미국 국방부로 이어지는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부시 정부 출범 직후 ‘미국의 국방 재건’ 보고서를 통해 군사적 패권주의와 선제공격론을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 오바마 정부의 정책 청사진은 미국진보센터에서 작성했다. 657쪽의 보고서 ‘미국을 위한 변화’가 그것이다.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한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안도 이 보고서에 담겨 있으며, 그밖에도 부시 독트린에 대한 재검토 및 이라크에서의 단계적 철군, 부자들에 대한 최고소득세율 인상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2년 전부터 <한경비즈니스>가 국내 싱크탱크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싱크탱크는 삼성경제연구소다. 국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 뒤를 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약 250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해 예산은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400여쪽의 이 비공개 보고서에는 참여정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국민소득 2만달러론’을 비롯해 ‘동북아 금융허브론’, ‘산업 클러스터 조성방안’ 등이 담겨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은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하다. 2008년 6월 창립 22돌 기념 심포지엄을 통해 삼성경제연구소는 “금산분리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듬해 4월 국회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직권상정을 거쳐 통과되었고, 1년 뒤인 올해 3월에는 일반 지주회사도 비은행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역시 국회 정무위를 통과해 본회의 인준만을 남겨두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2년 전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창했던 방향을 그대로 좇고 있다는 생각은 과연 필자만의 오해일까. 어쩌면 대한민국도 이미 싱크탱크라는 ‘나침반’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 모른다. 언론 보도를 보면, 2008년 한해 동안 18개 중앙일간지와 경제지를 분석한 결과,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가 무려 3197건에 달했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모로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몰라도 이 의제만으로 대선을 돌파할 수는 없다. 대선은 집권 청사진의 싸움이자, 국가 경영 능력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기업이나 정권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민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흩어져 고군분투하고 있는 진보 싱크탱크들도, 또 정책 대안을 바라는 국민들도 지혜와 열정을 모아야 할 때다.

윤찬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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