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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1 20:45 수정 : 2010.04.11 20:45





사교육 확대정책 쏟아내고
사교육 줄인다며 “교육방송 봐라”
중기 지원한다며 대기업 위주 정책
실용을 핑계로 여론 호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닮아 있다. 덩샤오핑이 주장한 일부 사람, 일부 지역이 먼저 부유해져도 된다는 ‘선부론’과 현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정책이 닮았다. 또 어느 정책이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과, 세종시 수정안이든 4대강이든 경제에 도움되면 된다는 실용주의식 사고가 꼭 닮았다. 그러나 한국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당면과제인 쥐만 잡으면 될 게 아니라 어떤 고양이가 가장 합리적인지 대화하고 어떤 쥐부터 잡을지 고민해야 한다.

실용주의는 유용성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는 점과 전통적 가치나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빛 좋은 실용주의는 ‘무책임주의’다. 현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이 그래왔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무책임한 정책이 남발됐다. 금융위기 전엔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으로 키코(KIKO) 가입을 꺼내들고는 이후엔 대기업 위주의 고환율정책을 편 것이 대표적 예다. 이는 제도적 불공정성 때문에 수많은 중소기업의 흑자도산을 야기했지만 법원판결로 은행의 손을 들어주며 오히려 중소기업에 책임을 물었다. 백년지대계 교육정책은 목적이 모순됨이 극에 달한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혜안은 <교육방송>(EBS)에서 수능문제를 70% 이상 내겠다는 거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립형사립고를 대폭 늘리고, 대학입시 자율화를 추진하고, 영어교육을 공교육에서 해결하겠다고 계획한 것들은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지 않던가. 실용주의는 이렇듯 장기적 대책이 있다거나 그것을 지향하진 않고 오히려 실용을 핑계로 여론을 호도해온 측면마저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노선과 같은 ‘철학’이라기보단 임기응변식 ‘태도’에 가깝다. 철학이 없는 실용주의가 정치이념이나 노선이 되어선 안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의 정책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파묻힌 중국인의 의식을 깨고 G2로 가는 경제발전의 길을 마련했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서 천안문 사태를 야기하는 등 인권을 무시하며 소통을 막았고 결과는 또 어땠나. ‘묻지마 경제성장’은 중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고 부자 납치가 비일비재한 극단적 빈부갈등으로 이어졌다. 또 성장을 중시한 실용은 거꾸로 환경파괴 등 성장복구비용으로 인해 그들의 미래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여기에 타산지석의 교훈이 있다. 시장 확대를 위해 국민과의 별다른 소통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한 것은 촛불시위의 불길을 더 크게 만들었다.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법인세·양도세·종부세 등 부자감세, 수도권 규제완화는 양극화를 초래해 사회적 연대를 깨고 갈등을 야기하지 않았던가. 대책 없는 실용은 그만, 이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치철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고대 중국의 정치가 관중은 “성군은 나라를 통치할 때 ‘마음’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했다. 구속된 대기업 총수를 사면시키면서 대접하는 것은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철학이 없는 실용주의적 정치는 원칙과 목적의 경시, 절차와 소통 과정의 무시로 인해 민주주의를 훼손해왔다. 우리는 이제 사회모순에 대한 인식과 사회의 실용적 요구를 반영했던 조선 후기의 실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토지제도와 신분제도의 개혁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모든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철학’이 있는 실용주의였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두루 살피는 성찰과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하는 정치철학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김동훈 울산시 남구 야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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