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창조질서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4대강 줄기를 막는
바벨탑의 교만을 닮은 대통령에게
“그만”이라 외쳐야 할 사람은 사제 얼마 전 신문 하단 광고에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라는 글이 실리면서 여러 가지 의혹이 키워지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비싼 광고비를 출연하며 가톨릭 주교단의 공식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짓을 한 사람들은 진정 누구인지, 누구의 사주로 가톨릭교회를 흔들려고 하는지, 그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그러한 교란이 가톨릭교회의 더욱 강한 결속을 초래할 것임을 모르는 그들에게 그저 코웃음이 나올 뿐이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창출에만 눈이 먼 정권은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수년 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4대강을 정비한다는 국책사업조차도 지방하천법 조례를 무시하고 홍수 조절이라는 비상 국면으로 몰아 이 나라를 온통 들쑤셔 놓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소망교회의 장로이신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하느님의 창조질서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4대강의 젖줄기를 막고 있다. 급기야 가톨릭 주교단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교구의 의식 있는 젊은 사제들이 시대적 소명 앞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지몽매한 이 정권의 교만함을 일깨우기 위해 예언자적 소명을 수행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하는데 사제인 나보고 미사나 드리고 성당에서 기도나 하고 있으란다. 제2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고, 쇠고기 파동에 촛불을 들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인권을 위해 그들의 손수건이 되어 주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려는 사제들을 보고 도대체 왜 그러시느냐고 묻는다면, 예수께서 유다와 빌라도에게 “그건 네 말이다”(마태26, 25/27, 11)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80년대부터 우리 민족에게 부활은 희망이었다. 4월의 봄기운과 함께하는 부활의 여명은 오랜 군부독재의 억압 속에 잠들어 있는 이 민족에게 자유와 민주를 흔들어 깨웠다. 인동초의 대통령과 권력을 버린 바보 대통령이 나올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의식을 심어준 것도 바로 부활이다. 국민들에게 깨어 있는 의식을 심어주고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어 시대를 역행하는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바로 부활이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11, 4)고 외치던 바벨탑의 교만처럼 시대를 역행하고 하늘을 찌르는 대통령의 공명심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세계가 우려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인 4대강 사업 추진을 밀어붙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깨어 있는 부활의 삶을 노래해야 한다. 엘살바도르의 대주교였던 오스카르 로메로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누군가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 사제이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삶이요,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송영오 천주교 수원교구 봉담성당 본당신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