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법통 계승한 국회에서?
을미사변 제단 있는 장충단에서?
역사성·상징성 있는 곳에서
다른 축제도 아닌 왜 벚꽃인가 해마다 봄이 무르익으면 전국 각지에서 벚꽃축제가 성황을 이룬다. 유명한 진해 군항제를 필두로 전국적으로 스무 곳 가까운 지역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벚꽃의 정취를 즐기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정겹고 아름답다. 벚꽃은 예로부터 일본인이 널리 사랑해 온 꽃이다. 벚꽃을 일본 국화(國花)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본에 공식적인 국화는 없다. 다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화(菊花)가 있고, 벚꽃을 일본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 왔다. 필자는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벚꽃을 멀리해야 한다는 따위의 ‘쿨하지 못한’ 주장을 할 생각은 결코 없다. 필자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자태에 감탄하곤 한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국회 경내에서 이른바 ‘국회 벚꽃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국회 벚꽃축제’는 크게 보면 한강 여의도 봄꽃축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국회 주최 문화행사다. 민의를 대변하는 전당인 국회가 국민과 친근하게 호흡하려는 노력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헌정 질서의 기본적인 틀을 선포한 헌법 전문을 되새겨볼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올해는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잘 자란 국회 경내의 벚나무를 뽑자는 게 아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축제를 열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국회 벚꽃축제’라는 명칭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국회 봄꽃축제’나 ‘국회 봄맞이 축제’ 정도가 좋다고 본다. 둘째,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남산 벚꽃축제’다. 서울 남산의 역사성과 상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장충단이다. 장충단은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때 순국한 훈련대 장병들을 제사 지내는 단으로, 고종의 명에 따라 1900년에 세워졌다. 경술국치 때 유행한 노래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남산 밑에 지은 장충단 저 집 나라 위해 몸 바친 신령 모시네/ 태산 같은 의리에 목숨 보기를 터럭같이 하도다/ 장한 그분네.’ 남산에는 올해로 순국 100주기를 맞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이준 열사 동상, 이시영 선생 동상,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자 음독 순국한 이한응 열사 기념비, 사명대사상 등이 있다. 남산 자락 동국대학교 구내에는 한용운 선생 시비도 서 있다. 명성황후의 넋이 살아 있다면, 장충단 근처 일대에서 벌어지는 벚꽃축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산에서 벚나무를 뽑자는 것도, 축제를 열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깊이 고려한 축제 명칭이 아쉽다는 것이다.
김호연 (재)김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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