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약자 앞에 군림하는 게 관료사회의 체질인가 |
이주노동 정책의 실패를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단속만능 정책에서 벗어나, 거시적이고 현실적인 이주노동자 합법화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약자 앞에서 군림하고 기만하는 관료사회 행태에 스스로 생명의 물을 줄 생각은 없는가.
얼마 전 법무부 체류심사과 김양수라는 직원이 <조선일보>에 글을 게재하여 이주노동조합 아누와르 위원장 연행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30여명이 퇴근길의 아누와르 위원장을 둘러싸고 상당한 부상을 입히며 체포하고 서울에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즉시 이송한 사실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단속 방식과 절차를 벗어난 표적단속이었음을 주장하는 노동계를 조롱하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법무부의 이런 행태는 지난 2001년에 ‘집회결사의 자유 및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던 꼬빌과 비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숙소를 50여명이 에워싸고 들이닥쳐 무더기로 연행하고는 호송 도중에 사진과 대조한 후, 다른 ‘불법체류자’들은 놓아준 적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 증명에 서명을 위조하여 추방하려 했다가 망신당하기도 했다. 2004년 초에는 미사 참석을 위해 모여 있던 300여명 가운데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장 샤말만 연행하여 추방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비정규노동자 집회에서 뭇매를 맞고 연행된 비두가 여행자증명에 서명을 거부하자 국제테러리스트로 둔갑시켜 본국으로 추방하기도 했다. 비두는 본국인 방글라데시에 송환되자마자 수감되어 정치범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방글라데시 재판정이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로 판결함으로써 방글라데시에 한국 법무부의 행태를 알려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이주노동자 운동 탄압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아누와르 위원장 표적연행에 대해 국제자유노련(ICFTU), 국제식품노련(IUF), 국제공공노련 한국지부(PSI-KC)와 같은 국제 산별노조들이 항의했고, 민주노총의 국제 상급단체인 국제자유노련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를 통해 제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모든 이주노동자는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거부당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노동자들이나 연수생은 노동부 지침이나 표준계약서에 의해 “태업, 파업, 쟁의 등 노사분규에 가담하려 하는 증거가 있거나 가담한 경우 또는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 즉각 추방된다는 규정에 묶여 있다. 강남의 잘나가는 학원가 영어강사들의 실정도 마찬가지다. 사업주나 출입국관리소는 ‘정치행위’나 ‘체류목적외 체류’의 죄목을 씌워 추방할 수 있다. 또한 계약 만료 후 14일 이내 재취업하지 않으면 추방되는 법조항도 노동조건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등록’ 노동자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은, 문제의 초점이 ‘체류자격’이 아니라 ‘이주’라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의 국제인권규약은 노동조합의 결성 및 가입을 포함하여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제22조), 외국인도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또 1990년에 제정된 ‘유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조약’ 제26조는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노동자에 대해 노동조합 기타 단체의 회의 및 활동에 참가하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제40조는 결성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의 경우, 제87호 조약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이’ 단체를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국제적 규약들은 이주노동자가 ‘인간’이고 ‘노동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노동부는 “취업자격이 없는 불법체류자가 장래의 근로조건 유지와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3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했다.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에 의해 권리 소외와 억압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노동3권의 기본 정신인 것은 국제적 상식이다. 값싼 노동력 이용을 위해 멀쩡한 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양산해 놓고, 그 약점을 미끼로 삼고 있다.
정부는 아누와르 위원장을 조속히 석방해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자주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 더이상 ‘불법체류’ 운운하는 여론몰이를 중단하기 바란다. 이주노동 정책의 실패를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단속만능 정책에서 벗어나, 거시적이고 현실적인 이주노동자 합법화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약자 앞에서 군림하고 기만하는 관료사회 행태에 스스로 생명의 물을 줄 생각은 없는가.
이윤주/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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