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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1 21:25 수정 : 2010.03.21 21:25





미군정 잔혹한 민간학살 속에서
민중봉기 주도한 김달삼과 담판
대학살 막고 평화 해결 위한 노력

금년은 국군의 효시인 광복군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군은 외형적인 물리적 군사력 면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강군으로 육성되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국민의식구조와 사회조직문화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왔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광복 후, 정권을 거머쥔 반민족 친일세력들은 국군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생존과 입신영달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독립운동가와 민족의식 있는 분들을 참살했다. 또한 국군을 동원한 군사반란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친일 정체를 숨기고 학살의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6·25전쟁을 금과옥조로 붙잡고 대북 적대의식 고취와 미국에 무한감사하는 종미사대주의적 정훈교육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왔다. 대부분 국민들은 군이 마치 반민족 반민주적인 집단으로 인식한다.

친일 매국노들이 미군정에 빌붙어 잔인무도하게 민간인을 학살하는 무법천지 하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 분투한 군인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제주 4·3 현장에서의 김익렬 장군이다.

그는 4·3 당시 현지 연대장으로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민중봉기를 주도하고 있던 김달삼과 직접 담판하는 등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무차별 대량학살의 초토화 작전만은 기필코 막겠다는 일념으로 미군정과 경찰에 맞서 고군분투했다. 치안 총책임자 조병옥과 맞닥뜨려 그의 비인도적이고 반민족적인 작태에 대해 육탄을 던져 처절히 질타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남긴 회고록은 4·3의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귀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우 친일분자들의 행패가 어떠했는지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에 참군인 김익렬 장군의 민족적 자부심에서 우러난 투철한 위민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이로써 친일독재권력에 이용당해 오욕으로 점철된 국군의 역사를 떨쳐버리고 ‘민족’ ‘민주’의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군대 개혁의 계기가 되게 하자.

김익렬 장군의 동상을 건립하여 그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김익렬 장군 상’을 제정하여 민족·민주 모범 군인을 뽑는 사업 그리고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개정하는 것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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