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땐 검찰 구형대로 ‘정찰제 판결’
다양한 판결은 사법부 건강성 표현
정권 찬사만을 바라는 세력은
독재권력에 대한 향수가 도진 자 법원에서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에 대한 무죄 혹은 유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자 조·중·동 신문들은 ‘전교조에 정치활동 하라는 면허장을 준 것’, ‘상식에 배치되는 편향 판결’이라는 식으로 사법부를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판사마다 판결이 다르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칼날을 세워 사법부 목을 옥죄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은 한명의 대통령이 지배하는 나라도 아니고, 계급장을 단 몇 명의 지배층 집단이 다스리는 나라도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헌법은 권력 남용과 견제를 위하여 입법·사법·행정부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고, 공무원들이 표현의 자유 한계를 넘어 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 몫으로 정해 놓았다. 시민은 현 정부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가 있고, 특정한 세계관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에 따라 이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만일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권리가 없다면 이는 침묵의 사회를 강요하는 것으로 더는 자유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시국선언을 한 교사도 법률 위반 여부를 떠나 주권자의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표명이 실정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대하여 언론이 비판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 대하여 마치 좌파 대변이며 논리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폭거와 다름없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법원을 흔들려는 속셈일 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이 참다운 매력이고 가치이듯이, 사법부를 구성하는 판사들의 세계관이 다양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유신독재 시절 검찰 구형에 동일한 형량을 반복 선고하였던 ‘정찰제 판결’을 생각해보라. 그때 사법부는 정치권력의 시녀라고 비판받았다. 지금은 정찰제 판결을 하던 유령의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건강성의 표현이 무죄 혹은 유죄 판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이 다소 혼란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절차적 과정이다. 우리 시대에 표출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법원이 정면으로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다. 현 정부에 대한 달콤한 찬사만을 노래하면서 단일대오를 요구하고 꿈꾸는 자들은 독재 권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도진 자들이다.
다만 민주주의 역사는 표현의 자유 확대 역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 홈스는 “사상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시국선언에 대한 유죄판결에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만일 그러한 일로 사법부 독립성이 침해된다면 우리는 볼테르처럼 법원을 위해 싸워야 한다. 김희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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