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권과 친하려는것과
북 주민과 친하려는 것 혼동
‘친북’은 통일을 위한 노력
친일과 동일한 평가 부당 며칠 전 어느 보수단체에서 <친북인명사전>에 등재할 친북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고 한다. 우선 ‘친북인명사전’이 진작 이루어져야 했던 과거청산의 문제를 국민들의 손으로 이루어 낸 쾌거인 ‘친일인명사전’의 대항마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실체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자의적인 명단 선정을 야기한 기준의 모호함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북한과 친하고자 하는 행위를 그들이 주장하듯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파괴를 선동하고자 하는 행위에 포섭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북한 정권과 친하고자 하는 것과 북한 주민과 친하고자 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에 협조하거나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것은 현행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에게 민족애로서 식량을 전달하는 등 도움을 주는 일은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탈북자도 국민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헌법에서도 명시적 조항을 두어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친북인명사전’에 언급된 친북인사들이 과연 북한 정권에 협력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통일을 지향했는가. 그뿐만 아니라 ‘친북인명사전’의 발간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합리적 기준 없이 친북인사로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유포하는 것은 발행자인 그 보수단체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침묵으로 유지되는 질서가 아닌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는 역동적인 질서)를 반질서화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민주적 질서는 혹여나 강자의 횡포를 위해 약자를 침묵시키고자 하는 질서는 아닌지, 친일 세력들이 기회주의적이었던 과거를 반성하는 것을 피하고 치부를 감추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빨갱이 논리’를 그저 무분별하게 수용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친북’을 ‘친일’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 ‘친북’의 개념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며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영역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개 집단의 주장을 마치 전체의 주장처럼 일반화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내심의 주장을 외부로 공표할 자유가 있지만 역사 기록으로 남길 권리는 없다. 국민적 합의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친북인명사전>에 실릴 친북인사들이 북한 정권과 친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북한 주민과 친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판명된다면 어쩌면 몽매한 시야를 넓혀준 그 보수단체의 노고에 감사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친북’은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전원종 고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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