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나진항 10년 사용하게 됐다 …
나선시가 특별시로 지정됐다 …
‘나진 소동’ 북한발 중국발 재연
이번에는 진짜일까 의구심은 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함경도의 작은 어촌 나진. 19세기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대충돌이었던 러일전쟁 기간 중, 일본 해군은 파도가 약하고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최적의 기항지를 물색하던 가운데, 바로 나진이라는 최고의 요충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는 만주 간선철도의 기종점을 나진까지 확장하여 나진을 일본 서해안 지역을 연계하는 중계항으로 개발했다. 일제의 대륙침략과 수탈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나진항은 해방 이후에도 몇 차례의 굴욕을 겪었다. 당시 소련은 극동해군의 작전 및 부동항으로의 기항을 위해 나진항을 1970년대 중반까지 군사항구로 빌려쓰게 되었고, 이 시기에 소련은 자국의 광궤 철도를 나진항까지 부설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나진은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사업에 따라 또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북한의 폐쇄적인 정치·경제시스템 및 교통 인프라의 미비 등으로 나진의 개발은 실패로 끝났다.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꺼져가던 나진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국 길림성 정부의 지원 아래 중국의 민간기업들이 북한 나선시와 항만, 도로, 철도 현대화와 관련된 다양한 조사사업 및 사업구상을 발표했다. 특히 2005년도에는 북-중 간에 총자본금 6090만유로(약 942억원)를 투자해 50년간 사업권을 보장받은 나선국제물류합영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기업은 나진항 현대화와 나진-훈춘 연결도로 건설사업을 추진하였으나 북핵 사태와 자본조달 곤란으로 다시 실패로 끝났다. 한편 러시아는 2004년에 나진과 러시아 하산역 간 철도노선 56㎞ 구간에 대해 북한과 공동조사를 실시하고, 2008년에는 나진-하산 간 철도 및 나진항 3호 부두 현대화를 위한 북-러 합영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2009년에는 나진항 연결 철도 현대화사업 기공식도 성대히 개최하였으나 사업은 다시 중단된 상태이다. 올해에도 이른바 ‘나진 소동’이 북한발 뉴스, 중국발 뉴스로 재연됐다. 올해 벽두에 나선시가 특별시로 지정됐고, 지난해 12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나진시 현지 지도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관련해 중국이 나진항 1호 부두를 10년간 사용하게 되었다는 보도와 중국 다롄(대련)의 민간기업이 이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진짜일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 때문일까? 이번은 전인대라는 중국 최대의 정치축제에서 성정부 고위 관계자의 공식회견이라서 과거보다는 무게가 더 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규모 교통 인프라 사업, 물류사업은 투자자금의 회수 그리고 싸고 빠르며 안전한 수송로 구축이 성패의 관건이다. 금번의 ‘나진 소동’에서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나진항 1개의 잡화부두를 통해 3억 인민폐(약 495억원)라는 투자자금을 10년이라는 사업기간 안에 회수할 수 있을지의 여부, 또 전문기업들도 성공이 어려운 국제물류사업과 항만운영을 다롄의 환경전문기업이 나서고 있다는 점, 북한에서의 통관·통행·통신 등 이른바 3통의 장애물 극복 여부, 나진항 3개 부두 중 하나는 중국, 하나는 러시아가 사용한다는 사실 등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란 이빨 자국을 남긴다. 과거의 흐름에 비추어 보건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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