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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3 20:36 수정 : 2010.03.03 20:36





뚱뚱한 여성에 대한 혐오감 조장
날씬녀 비꼬던 유머에서 뒷걸음
청소년 일탈 훈계하는 것도
기성세대 가치관 비틀던 데서 후퇴

<개그콘서트> 보는 걸 1년에 한두 번 놓칠까 말까 하는 골수팬으로서, 최근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글을 쓴다. 개그의 소재와 내용은 무궁무진하겠지만 크게 나누어 기존의 고정관념에 기댄 개그와 고정관념을 비트는 개그로 나누어 보자. 고정관념은 대체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의 윤리성은 구성원들에게 쉽게 통용되는 만큼 때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특히 개그프로라면 더더욱 그러한 도덕적 기준을 사려 있게 살피며 방송하기는 어려울 터다. 그러나 많은 대중이 보는 공중파 방송이 그 사회의 고정관념을 강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그냥 내비둬’ 코너에서는 뚱뚱한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과 편견을 두 남자가 드러내는 식의 개그를 한다. 이 코너의 웃음은 뚱뚱한 여성에 대해 어떤 짐승 혹은 사물에 잘 비유하느냐에 달려 있을 정도로 가학적이고 저질스럽다. 몸에 대한 비하는 개그의 오랜 소재지만, 이 코너만큼 노골적으로 뚱뚱한 여성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래전에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출산드라라는 캐릭터가 마른 것을 여성 미모의 최우선으로 치는 요즘 세태를 비꼬고 풍자해 웃음을 줬던 걸 생각해 본다면, 개그콘서트의 유머는 어떤 면에서는 뒷걸음치고 있는 셈이다.

‘드라이클리닝’이라는 코너는 청소년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훈계하는 것이 기본적인 형식인데 설날특집에서는 요즘 문제가 된 과격한 졸업행사를 치르는 청소년들을 소재로 다뤘다. 일반적으로 개그맨들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비꼬고 뒤집어서 재미를 줬던 것에 견준다면 이 코너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청소년에 대한 기성세대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코너를 이끌어가는 역할의 윤형빈은 밀가루를 뒤집어쓴 청소년 역의 개그맨에게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런 날 제일 신났어”라고 비꼰다. 청소년들의 ‘일탈’이 과연 ‘청소년들의 일탈’인가 아니면 ‘어른들이 바라보는 청소년의 일탈’인가도 따져볼 만한 문제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위 대사는 정말 비열하다. 한국만큼 성적순에 의해 아이들의 도덕성까지 판단되고, 공부에 능하지 않은 아이는 다른 모든 좋지 않을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 편견도 나쁘지만, 공중파에서 이 대사를 내뱉는 윤형빈과 그것을 편집 없이 방송한 <한국방송>은 정말 나쁘다. 아님 우리가 성적제일주의에 중독되어 그런 발언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개그는 웃음을 주기 위한 퍼포먼스다. 개그프로그램에서 성직자의 태도와 양심을 찾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사람들을 웃기기 전에, 그 개그가 편견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뚱뚱한 사람도, 청소년도 우리의 국민이고, 개그콘서트가 타고 흐르는 그 전파의 주인이다.

박승범 광주 북구 오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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