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공장 생활 2년 만에
스물셋 꽃다운 나이로 떠난 그
공장 환경 개선 노력만 했어도
백혈병에 걸리는 비극 막았을텐데 나무들마다 새 눈을 틔우며 꽃망울을 부풀릴 태세를 갖추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약동하는 봄기운을 느끼며 자연스레 희망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남들과 달리 고통스러운 기억과 함께 봄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7년 3월6일은 황유미씨가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여고 졸업을 앞두고 고향인 속초에서 수원으로 향했던 열아홉 살의 소녀가 공장 생활 2년 만에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구나 세계일류를 자랑하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같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황민웅씨, 황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이숙영씨 역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삼성 쪽의 말대로 이 모든 게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대책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에 걸린 노동자가 20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상식을 가진 이라면 이러한 현실 앞에 결코 ‘우연’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처음 삼성에 들어가서 입문교육을 받을 때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가전부문 조립라인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거기서 그는 생산직 직원들이 열악한 환경과 배탈이 나도 화장실에 갈 수 없을 만큼 꽉 짜인 일정 속에서 기계부품처럼 힘겹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가 10조원에 이를 거라는데, 그 돈은 결국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땀 흘리며 벌어준 돈을 빼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돈을 공장 환경을 개선하는 데만 썼더라도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당하기 힘든 치료비를 써가며 투병중인 노동자들이 있으며,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을 풀어주어야 할 삼성은 눈도 꿈쩍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산재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전문화방송에서 80%까지 촬영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집단발병에 관한 방송이 사쪽의 제지로 인해 제작이 중지되었다. 언론마저도 삼성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삼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하며, 진실 규명을 통해 억울한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황유미씨의 3주기를 앞두고 3월2일부터 5일까지 ‘반도체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삼성에 의해 버림받은 가족을 당신을 포함한 우리가 슬픔 가득한 손길로 끌어안아줄 때, 삼성도 조금씩 비인간적인 얼굴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박일환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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