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종목 사이 끼워넣기 편집
황금시간 광고 수익 극대화 위해
실시간 경기 안보여주고 녹화방송
독점중계는 시청권 빼앗아가 최근 <에스비에스>(SBS)의 겨울올림픽 독점 중계로 한국에서는 말이 많은가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장의 논리로 지켜보겠다는 것 같고, 또 곧 열릴 월드컵 경기도 에스비에스가 독점중계권을 갖고 있으니, 당장은 한 방송사의 독점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되려나보다. 중계권을 놓고 벌이는 방송사의 경쟁이 국익에 반한다는 논리로 반박을 하지만, 빛바랜 ‘국익’이란 단어가 오히려 설득력을 약하게 한다. 이런 방송 독점의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미국 독점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엔비시>(NBC)의 녹화편집방송(Tape Delay) 전략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청자의 85%가 살고 있는 동부와 중부에서는 실시간 중계와 함께 인기 종목을 녹화 편집해서 프라임타임에 방송하고, 밴쿠버와 같은 시간대인 서부에서는 오히려 모두 녹화 편집방송을 하는 것이다. 엔비시 쪽은 시청자들이 주 시청시간에 편안히 올림픽을 보도록 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업방송의 전략임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청자의 권익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 서부가 가장 큰 예이다. 같은 시간대에 경기가 벌어지고 있지만, 경기를 바로 볼 수가 없다. 게다가 경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경기 결과를 알지 않도록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엔비시를 제외한 다른 매체를 보아서도 안 되고, 한국의 인터넷을 방문해도 안 된다. 전세계의 모든 매체와 단절하고 8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8시가 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시 시청률을 위해서 인기 종목 사이에 비인기 종목을 편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연이어 벌어질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 경기들 사이에 다른 종목들이 20~30분씩 끼어든다. 예를 들면 지난 23일(현지시각) 김연아 경기에서는 실제로는 5~6명의 여자 선수 경기를 보여주었지만, 전체 방송은 끼워넣기와 함께 3시간짜리 방송이 됐다. 엔비시에서 광고 수익을 위해서 전형적인 시청률 유지 수법을 쓴 것이다. 여기에 시청자의 반발은, 특히 서부에서 엄청나다. 하지만 독점권을 가진 엔비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못한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독점을 하고, 수익을 위해서 시청자를 좌지우지할 권리를 엔비시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에 대해 다양한 경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을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누가 그 다양함을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방송사가 합동 방송을 해서 얻는 다양함이라는 것(그래서 예전에는 컬링이란 희한한 경기도 즐겁게 볼 수 있었다)과 방송사가 맘대로 선택해서 입안으로 밀어넣은 다양함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또 인터넷으로 여러 채널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인기 있는 여름 게임인 베이징 올림픽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줄어든 이번 엔비시의 인터넷 중계를 보면, 이 또한 한 방송사가 이익을 위해서 시청자를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변명을 하든, 시장의 논리와 독점, 그리고 이익으로 연결되는 단독중계에서는 시청자의 이익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런 독점으로 얻는 것은 방송사의 수익이고 잃는 것은 시청자의 시청권이다. 지금 한국은 이것을 결정할 기로에 서 있고, 현재의 기류대로 간다면, 몇 년 뒤에는 김연아와 이정수 경기를 보기 위해서 몇 시간씩 광고를 보면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헌율 미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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