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피디수첩 판결 때늦은 성명
의료계 증인 선 판결
자문 구하지 않은 것처럼 쓰고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 안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했던 <문화방송>(MBC) ‘피디(PD) 수첩’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끈질긴 ‘법치’의 결과가 지난 1월20일에 있었다. 그 요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사안에 대하여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공직자의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뒤늦게 피디수첩 1심 재판부를 향하여 “판결에 담긴 내용 가운데 일부 사항이 의료계의 판단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재판과 직접 관련도 없는 직능단체가 공식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성명서에 열거된 내용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사항들이 서로 뒤섞여 있어 재판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기 위한 성명서인지 이해하기 어렵도록 되어 있다. 재판부는 사법적 판단을 할 뿐이지 의학적 판단까지 하는 위치에 있지 않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의사, 의학자들, 그리고 수의학자들이 이번 피디수첩 관련 수사 단계나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법정에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그 의사들은 당연히 의협에 소속된 회원들이며, 검찰 쪽 증인으로 출석한 한 의사는 한때 의협의 정책이사직까지 맡은 바 있는 ‘신경병리학자’이다. 그런데도 의협은 “재판부가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대한의사협회의 자문을 중하게 여겨줄 것을 요청”한다고 하여, 재판부가 의료계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독단적인 판결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게끔 하고 있다. 이 의협 성명서가 발표된 이튿날 ‘조중동’은 성명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었다. 길고 길었던 그 재판 과정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적어도 조중동 독자들은 1심 재판부 판사가 의학적 식견도 없으면서 의료계의 자문도 구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판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의협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집행부와 원로 의사들이 모여 미국산 쇠고기를 구워 ‘드시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이 있다. “에이즈 환자와 성관계를 가지더라도 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어도 다 광우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황당무계한 성명서를 발표한 적도 있다. 이런 의협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의협 집행부는 한번쯤은 고민을 해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이 소속 회원들을 덜 부끄럽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김진국 대구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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