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대 총장과 여교수 애정관계
미국보도와 달리 ‘미모’ 강조
외모 언급은 본질 흐리고 단순화 최근 미국 시카고 대학 총장이 학내 여교수와의 애정 관계를 인정하면서 뉴스로 보도되었고, 국내 한 주요 일간지는 “시카고 대학의 캠퍼스가 총장과 미모의 여교수 사이의 로맨스로 시끄럽다”며 이 외신을 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 언론 기사가 여교수의 ‘미모’를 언급한 데에 비해, 시카고 대학의 학내 신문이나 <시카고 트리뷴>의 기사에서는 여교수의 외모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단지 총장의 사적인 관계가 그의 업무 능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학의 공식적인 입장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물론 기사를 옮긴 국내 기자가 해당 여교수의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미모’를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정보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미국의 주류 언론에서는 여성의 ‘미모’를 언급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국내 신문사는 원문 기사에 없던 ‘미모’라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였다는 점에서 보도 방식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실 국내 언론에서 보도 내용과의 상관관계가 불확실한 보도 대상자의 외모를 기사화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학력 위조와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로 인해 언론의 표적이 되었던 신아무개씨에게도 ‘미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최근 한 정치인이 횡령 혐의로 고소한 여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여 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인간의 외모에 대한 판단 자체가 주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인물의 외모가 보도 내용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관련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그 관련성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외모를 기사의 전면에 내세운 보도 방식은 복잡다단한 변수들이 관련된 사건을 ‘권력자’와 ‘미모’의 여성 사이의 전형적인 이야기로 단순화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주로 여성의 외모를 화젯거리로 삼는 보도 관행은 객관성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여성 정치가, 최고경영자(CEO), 명문대 합격생 등 화제의 인물이 “실력에 미모까지 겸비”했다는 기사 내용은 이미 상투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보도 관행으로 인해, 여성은 실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갖추어야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다는 인식은 점차 당위적 명제로 강화될 수 있다. ‘미모’뿐만 아니라 ‘에스(S)라인’, ‘훈남’, ‘꽃미남’ 등 한 개인의 외모에 대해 심미적인 호불호를 전제로 하여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표현들이 주요 언론 매체들에 범람하고 있다. 언론은 사회적인 흐름과 수요를 따라가면서도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공신력 있는 언론에서 보도 대상자의 ‘외모’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기사 내용으로 삼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김기호 시카고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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