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보다는 일상생활사로 꾸며
분단아픔·산업화·민주화 거쳐온
땀내 나는 삶을 만나게 해야 국립현대사박물관, 국립대한민국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른바 건국6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온 박물관 건립 사업에서 바뀌어 온 명칭이다.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날 만큼 우리 현대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관점 차이는 크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광복회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계획 백지화를 요구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수립 시점으로 봐야 하는데, 기존 계획은 1948년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복회의 요구 이후 건립위원회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결정함으로써 합의의 실마리는 마련됐다. 그러나 구체적 건립 과정에서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역 간, 이념 간 대립과 단절을 넘어 상호이해와 공감 속에서 국민통합을 이뤄낼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구상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문제는 그런 구상의 실현 가능성과 방안이다. 필자는 그 방안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기조를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적 삶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정치적인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대한민국 역사의 주역인 국민의 일상적 삶을 담아내야 한다. 요컨대 정치사보다는 사회사, 사회사보다는 일상사와 생활사에 무게를 두자는 것이다. 식민지 압제와 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끈질기게 이어져 온 우리 삶의 모습과 자취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라고 하면 정치와 이념의 안경부터 들이대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그 안경을 벗고 보면 우리가 살아온 일상의 구체적 풍경이 펼쳐진다. 그 풍경은 산업화 현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산업역군의 일상일 수도, 빈곤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빈민의 신산한 삶일 수도 있다. 식민지 시대의 압제받는 일상의 한 자락일 수도, 역시 식민지 시대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첨단 유행 스타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삶이자 곧 역사다. 그것을 포착하여 박물관이라는 제도와 형식 속에 구현해내는 쉽지 않은 과제에서 우리의 지혜를 모아 보자. 서울의 세종로는 조선 시대부터 정치의 거리였다. 경복궁 좌우로 의정부, 육조, 한성부 등 주요 관청이 들어서 있었다. 오늘날에도 세종로는 청와대를 멀지 않은 곳에 두고 정부중앙청사, 외교부 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부 청사 자리에 들어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러한 정관가(政官街)의 무게감을 덜고, 많은 국민들이 지난날 우리의 삶을 차분하게 돌이켜볼 수 있는 삶의 자리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럴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민통합을 이뤄낼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호연 (재)김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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