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으로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신다
우리 정부나 일본 정부 여전히 모르쇠
한·일 시민단체 움직임에 희망 지난 2일,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공장 직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셨던 경산시 벽천동의 김순악 할머니. 광복 후에도 위안부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지내오신 분이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위해 힘쓰셨던 분이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며 꽃 선물을 받으면 소녀처럼 기뻐하시던 분이다. 이제는 아마 좋은 곳으로 가셨을 테지만, 죽기 전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고 싶으시다는 바람은 결국 이뤄드리지 못했다. 김순악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 지난해에만 다섯 분, 재작년에는 열네 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2005년 이후에만 59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중 대구·경북 지역에 거주하시던 분도 7명이다.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84살이고 대부분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계시니 어쩌면 준비돼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건 “눈감기 전 일본의 사죄를 받고 싶다”시던 바람,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 교과서에도 기록해 역사로 남겨야 한다”시던 바람. 광복 후 60년이 넘도록 미뤄져 왔던 그 바람 앞에서, 할머니들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평생을 눈물과 회한 속에 살다 간 할머니들의 죽음 앞에서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겠다”는 우리 정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니 2007년 7월에는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해 일본 총리의 공식적인 시인과 사과를 촉구하는 판이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 동원을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한 미국 하원의 결의에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그제야 “결의안 채택을 환영”한단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문제이며 우리 정부는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2008년부터는 일본의 지방의회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져 현재 14개 지역에 달한다고 한다. 정작 피해자인 우리나라가 대구·부천·통영·거제시의회와 경남도의회의 5곳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본 내 시민단체들과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은 각각 자국민의 1%인 120만명과 50만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일본 국회에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위한 입법화를 요구하는 이 서명운동은, 대구지역에서도 오는 3월까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시민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우선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리고 있는 서명운동부터 동참하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네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다. 또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 앞에서 떳떳해지기 위한, 우리들 자신을 위한 일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피해자들 앞에서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이는 여전히 현재의 문제이며, 우리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
조승호 대구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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