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가벼이 보는 정부·여당의 자기모순
언론법 위법성 있단 헌재 결정 무시
피디수첩 무죄 판결에도 법원 공격
정연주 전 사장 해임 무효에는 침묵
법치 망친 정부는 어떤 책임 질 것인가 근대 서구의 지성, 토머스 홉스는 고전이 된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법과 질서가 없는 끔찍한 상태를 고발합니다. 옛날엔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답니다, 마치 정글의 동물처럼요. 그러나 그 세상은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죠. 대신 사람들이 절대적인 자유를 갖고 있어서였습니다. 살해할 자유, 도둑질할 자유, 자유의 범람은 모든 이들을 끊임없는 고통에 빠뜨렸고, 지친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질서와 안정을 갈구하게 됩니다. 바로, 사회와 법의 기원인 것이죠. 실제로 사회를 둘러보면, 강자는 법의 보호가 덜 필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있고, 연이 있으니 굳이 법의 정의를 찾지 않아도 그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 약자는 그 약함으로 인해 법에 기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정부는 법을 정하고 강제합니다. 권력자의 기분이 아닌,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은 바로 이래서입니다. 다수인 약자를 보호함으로 해서 사회의 안정을 객관적으로 약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부가 법을 가벼이 본다면, 그것은 자기모순인 셈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현 정부는 이런 자기모순 속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헌법재판소는 언론관계법이 위법성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로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헌재까지 개입한 사안이면 그 애매한 결정을 입법부에서 다시 고민하고 명쾌한 정치적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일 테죠. 하지만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시행령 개정을 의결하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친정부 티브이 채널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약 2주 후, 서울행정법원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해임처분이 무효임을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정소송의 당사자인 대통령은 말이 없었습니다. 정연주 사장을 몰아냈고 현 대통령의 언론통인 김인규씨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새해 들어서도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됩니다. 강기갑 의원과 ‘피디수첩’ 제작진은 각각 공무방해와 광우병 허위보도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무리한 법의 해석도 모자라, 정부와 여당은 법원을 공공연히 질타하고 있습니다.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사법행위를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로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검찰총장이라는 사람은 국민의 불안을 운운합니다. 법의 체면이 그의 수호자의 손에 처참히 구겨지는 순간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은 정부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법을 우습게 보는 것은 정부로서 치명적인 것입니다. 토머스 홉스가 지적한 대로 정부는 그 법적 약속을 바로 존재의 이유로 하는 탓이지요. 법을 어긴 것은 고치면 되지만, 법을 우습게 만들어 놓으면 사회와 질서 전체를 위협하는 탓에 그 뒷수습이 간단치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들어서면서 법이 바로 서는 사회, 한 지도자가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가는 듯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의 현 정부가 법치주의를 흔들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명박 개인은 곧 그의 사저로 돌아가면 그만이겠지만, 그가 망쳐놓은 법치에의 신뢰를 안고 살아갈 국민 다수는 어쩌란 말인가요.
남태현 미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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