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서울도성 위 숙소 공사 들통
4차례 공사중지명령 받고 중지
공사건물 철거 않고 재심 요청 태세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잿물 최근 창의문 인근 서울도성 훼손 문제로 국방부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부터 국가사적 10호로 지정된 서울성곽 위에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의 숙소를 허가 없이 짓다가 들통이 나서 문화재청으로부터 4차례나 공사 중지 명령을 받고서야 공사를 중지하게 된 것이다. 국방부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차기 주요20개국(G20) 회의와 관련된 건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G20을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된 시점과 건물의 착공 시기를 아무리 따져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국가사적으로부터 500m 이내에 현상변경을 할 경우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게 되어 있지만 서울시는 별도의 조례를 만들어 100m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짓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군인숙소는 국가사적 10호인 서울성곽의 외벽에서 불과 2m밖에 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서울성곽 위에 지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성곽은 2006년부터 2013년을 목표로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방부는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충북 보은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인 삼년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다가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유네스코는 허물어진 성 일부에 새 돌을 깎아 땜질한 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하물며 세계문화유산 위에 군사시설을 지어 놓으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받아주겠는가.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다음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궁궐과 종묘사직을 건립한 후, 도읍지의 국토방위를 위해 즉위 4년째 되던 해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여 수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서울도성을 보면서 우리는 이곳이 조선 500년의 도읍지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런데 국토방위의 의무를 띠고 있는 국방부가 국토방위의 의지로 건설한 서울도성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훼손에 앞장서 놓고 무슨 몽니를 부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굳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중인 서울도성 위에 군인숙소를 지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만약 국방부가 아닌 일반인이 서울도성 위에 허가도 받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문화재청이 4차례나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고, 불법으로 공사중인 건물을 문화재청에서 심의에 회부하여 심의를 해줬을까? 이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특혜임이 틀림없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 불가 판정이 나온 건 당연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한다. 불법이든 무엇이든 국가사적 10호인 서울도성 위에라도 군인숙소를 기필코 지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임이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국방부에 의해 훼손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어디 이것뿐이랴. 언론 보도에서 본 바와 같이 낙산공원 인근에도 서울도성 위에 버젓이 군 관련 시설물이 깔고 앉아 있고, 서울을 벗어나 경기 북부지역으로 가면 정말 가관이다. 전방부대라는 경기도 포천, 연천, 동두천, 의정부에 널려 있는 삼국시대 이래의 국토방위유적은 국방부에 의해 상당수 훼손된 상태다. 경기 북부지역은 삼국시대에도 고구려와 백제가 대치하고 있었던 지역이라 산성, 토성, 보루성 등을 비롯하여 국토방위유적(관방유적)이 산재해 있다. 봉서산성, 칠중성, 호로고루 남안성, 기관성, 당포성, 초성리토성, 남한산성 옹성은 아예 군부대에 의해 점령당해 버렸고, 군부대에 점령당하지 않은 전곡리토성, 호로고루 북안성, 은대리성, 월롱산성 등도 참호, 교통호, 콘크리트 벙커 등 군 관련 시설물로 인해 더는 유적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져 있다. 국방을 핑계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더 이상 희생되는 것을 용인하는 우리 국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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