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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13 19:27 수정 : 2010.01.13 19:27





우물 빼앗는 ‘사막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사막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다 안다. 영상 63도, 태양은 입술을 태우고 목젖을 바작바작 태운다. 말라죽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우물을 파거나, 하나의 우물로는 모자라 남이 파놓은 열 곳, 백 곳의 우물까지 빼앗고자 발버둥 치는 곳,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사막이니까.

나의 그녀는 네 식구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2005년 3월 서울의 홍대입구역 어름에 두리반이라는 식당을 차렸다. 칼국수 보쌈 전문점이다. 주택청약예금까지 해약하면서 돈을 긁어모았으나 모자랐다. 2500만원 대출을 받고서야 문을 열게 되었지만, 네 식구의 해갈에는 좀 모자라는 우물이었다. 나는 출판사 편집일이라는 우물을 하나 더 파야 했다.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인생이 다 그런 거지.

2007년 12월로 기억한다. 영업을 시작한 지 채 3년도 안 돼, 나의 그녀의 우물인 두리반을 빼앗으려는 자들이 불시에 나타났다. 인천공항행 경전철역이 들어선다고 하여 졸지에 노다지가 된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조무래기 투기꾼 집단인 남전디앤씨 측이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평당 800여만원 하던 땅을 무려 8000여만원에 매입했다. 두리반이 들어 있는 3층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에 눈멀면 다 그런 거지.

한데 얼마나 쉬쉬하면서 매매가 이뤄졌는지, 11세대 세입자들은 자신들의 건물주가 건물을 팔아넘긴 사실조차 내용증명이 날아오고, 명도소송장이 날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두리반이 있는 건물 지하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던 여주인이 명도소송장이 날아오기 3, 4개월 전에 소방검열을 받은 적 있다. 검열 나온 소방관은 소방시설 미비로 영업정지를 하겠다고 했다. 화들짝 놀란 여주인이 즉각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교동 167번지에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 혹시 우리 건물도 팔리는 게 아니냐, 만약 그렇다면 400만원씩이나 들여 소방시설할 필요가 있겠느냐, 소방관도 곧 건물이 팔린다면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하더라,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건물주는 말했다. “어디서 들은 흰소리야. 절대 그런 일 없어. 안 팔아! 왜 팔아! 미쳤어, 그걸 팔게!” 단란주점 여주인은 다음날 곧장 400여만 원의 돈을 들여 소방시설을 했다. 계속 물을 먹기 위해 자신의 우물에 재투자한 것이다. 믿을 게 따로 있는 거지.

투기꾼 손 들어준 법정


2008년 봄부터 11세대가 변호사를 앞세워 지리한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으로 맞섰다. 내내 조무래기 투기꾼들 뒤에 숨어 있던 진정한 시행사 한국토지신탁 측도 값비싼 변호사를 내세웠다. 그들 역시 임대차보호법으로 맞섰다. 그들 변호사는 재개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은 임대차보호법의 예외조항임을 먼저 들먹였다. 동교동 167번지 일대는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3년 만에 쫓아내도 문제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영업보상도 할 필요 없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젠장,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 다 그런 거지.

판사는 한국토지신탁 측 손을 들어줬다. 세입자들은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판사는 한국토지신탁 측 손을 들어줬다. 세입자들은 폭삭 망했다. 한국토지신탁 측은 다시 뒤로 숨었고, 예의 조무래기 투기꾼들이 튀어나와 상가마다 돌기 시작했다. “봤냐? 너희는 끝났다. 이사비용 300만원 주겠다, 이사비용 150만원 주겠다, 이사비용 70만원 주겠다…. 자 이제, 사막을 향해 앞으로 갓!” 우물 없이 무슨 수로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견딘단 말인가. 그러니 어쩌? 11세대 세입자들은 뭉칠 수밖에 없어서 뭉쳤다. 회장을 뽑고, 전단지를 만들고, 세입자들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도 내걸었다. 그게 2009년 6월의 일이다.

3개월쯤 지난 초가을, 조무래기 투기꾼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상가세입자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어 자신들의 건재함부터 알렸다.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마름으로서의 건재함이었다. 그들은 내용증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협상할 생각이면 전화를 걸되 반드시 개별적으로 전화하라!”

사막에 물 한바가지만 들고 나가라

뭉쳐서 대응하는 게 옳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디 그런가. 이발소가 제일 먼저 전화를 걸었다. 신발가게가 뒤를 이었다. 르꼬르지 옷가게가 전화를 걸었고, 세입자 대책회장인 후닥식당조차 후다닥 전화를 걸었다. 다 걸었다, 두리반만 빼놓고.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파놓은 우물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사막으로 내동댕이쳐지면 어찌 살려고!’ 그런데도 세입자들은 하나하나 도장을 찍고 빠져나갔다. 어떤 세입자는 물 한 바가지를 들고, 어떤 세입자는 물 두 바가지를 들고 그렇게 빠져나갔다. 물론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진즉부터 조무래기 투기꾼들에게 시달려온 라틴덴스학원은 단 한 모금의 물도 못 들고 나갔다. 소위 말하는 보증금은커녕 이사비용도 못 받고 나갔다는 말이다. 아니 300만원의 이사비용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거 받고 받았다는 소리 듣느니 그냥 나가겠다, 똥 같은 자식들아, 했던 것이다.

2009년 11월 말, 조무래기 투기꾼들은 이제 두 집만 들어내면 되었다. 그들은 먼저 꽃집을 찾았다. “몇 바가지 줄까?” “네 바가지는 주셔야죠.” “그렇겐 안 된다. 두 바가지 주겠다.” “그럼, 세 바가지라도 주세요. 보증금 없는 양재동 화원단지에 들어가려해도 그 정도는 돼야 해요.” “우린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두리반 우물을 어떻게 빼앗는지 보게 되면 두 바가지 물도 감지덕지할 것이다.”

그들은 곧장 두리반으로 왔다. “몇 바가지 줄까?” “몇 바가지는 필요 없다. 두리반의 반 만한 우물이라도 좋으니 우물을 파달라. 우리 네 식구 명줄이 걸린 우물을 빼앗는데, 그 정도는 파줘야 할 게 아니냐?” “그건 안 된다.” “그렇다면 너희가 가져온 협상안은 도대체 뭐냐?” “이사비용 300만 원!” 그들은 야만적인 웃음을 지었고, 두리반의 나의 그녀는 입술을 사려 물었다.

그리고 2009년 12월24일 오후 4시,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마름인 조무래기 투기꾼들이 30여 명의 용역을 뒤세워 두리반을 덮쳤다. 집기를 들어내고 나의 그녀를 들어냈다. 두리반 현관 앞에는 철판까지 덧대어놓아 아예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였다. 그 모든 것이 두어 시간 만에 끝났다. 이런 젠장, 이사비용 300만 원, 그거라도 받을 걸 그랬나? 한 바가지 물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그러나 대한민국은 사막이고, 사막의 낮 기온은 영상 63도. 한 바가지 물로는 말라죽는 거지. 우물이 없다면 끝내 말라죽는 거지.

2009년 12월26일 02시, 살갗을 에어내는 칼바람 부는 그 새벽에 나의 그녀는 절단기로 철판을 뜯어내고 두리반에 진입하여 농성을 시작했다. 이래죽나 저래죽나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였다. 모교 민주동문회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번을 서겠다는 동지애를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도 우물쭈물하던 내게 민주동문회 식구들은 말했다. “왜 이렇게 나약한가? 두리반이 두리반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잖은가? 오늘도 불안에 떨고 있는 모든 영세한 세입자들의 문제가 아닌가? 용산참사로도 해결되지 못한 세입자보호법안 마련의 실가닥 같은 역할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리하여 모든 집기를 들어낸 텅 빈 두리반에서 나와 나의 그녀는 농성중이다. 대한민국은 사막이니,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빼앗긴 우물을 돌려달라고! 생수공장을 차려놓고 떼돈 벌려거든, 모든 영세한 세입자들의 우물부터 여하한 보장하라고!

유채림 소설가, 두리반 주인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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