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공계 인기 떨어진단 말에
일본학자 안심했다 농담
기초과학이 선진국 문여는 열쇠
안정적 연구 일자리 많이 만들어야 얼마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학회에서 저명한 일본 학자를 만났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초과학 위기로 화제가 넘어갔는데, 현재 일본에서 기초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의 수와 질이 급감하고 있어서, 국가경쟁력의 관점에서 정말 큰일이라는 의견을 그 일본 학자가 피력하였다. 그리고 한국은 어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즉 22년 전에는 일본의 도쿄대에 해당하는 서울대의 경우 의대보다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등이 더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어 의대의 경쟁률이 가장 높다. 기초과학, 특히 수학, 물리, 화학과 같은 순수기초과학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의 수와 질이 일본과 똑같이 떨어지고 있다. 그랬더니 그 일본 학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자신은 이제 안심했다고 했다. 내가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최근 한국의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해서 나는 조만간 한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따라잡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는데, 당신에게 한국에서 순수기초과학 전공자의 수와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그 일본 학자의 이야기는 반은 농담이었지만,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국가경쟁력은 응용과학에 집중하면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고, 지난 30년간 그렇게 한 결과 우리는 현재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응용과학만으로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는 지금 우리의 현 국가경쟁력이 응용과학만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만들어준 한국의 고부가가치 수출품 중에서, 핵심기술이나 부품은 국외에서 들여온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즉 선진국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열쇠는 순수기초과학이 쥐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기초과학의 위기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순수기초과학의 위기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많이 있어 왔고, 다양한 의견이 도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대의 흐름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공무원 고시”라는 말도 등장했다고 한다. 공무원은 다른 직업에 비해 월급이 월등히 많은 직종이 아닌데도, 왜 이렇게 공무원의 인기가 높은 것일까?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안정성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순수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기초과학자들이 직업의 안정성을 누리면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직장은 민간에서 만들기는 힘들고,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다음번에 일본 학자가 나에게 한국의 순수기초과학 현황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한국 정부에서 만명 이상의 순수기초과학자들이 평생 안정되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를 설립해서, 요즘 순수기초과학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내 대답을 듣고, 일본 학자의 얼굴이 새파래지는 것을 보고 싶다. 최석용 전남대 의학과 조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