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논술과목 개설은 변칙이다 |
재반론-“논술 공교육 강화 필요…”를 읽고
정상화 논의는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도록 공교육이 사교육까지 담당하자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 정상화는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이 아니라 얽힌 모순의 뿌리인 학벌사회의 해소를 통해 공교육 본래의 취지를 되찾을 때 얻을 수 있다.
지난 기고문에서 천범민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학벌지상주의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그릇된 입시제도에 있는 만큼 논술 강화를 통해 단순 지식의 평가 위주인 현행 입시제도를 사고력 측정 위주로 개선하는 것은 학벌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둘째, 학교에서 독서교육과 논술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서관 투자를 늘리고 논술을 정규과목으로 만들어 인문학 전공자들이 담당하도록 한다. 셋째, 논술을 공교육에 포함시킴으로써 사교육비 부담 능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을 위하여 공교육을 통해 기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자.
우선, 천씨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객관식 시험에서 사고력 측정 위주의 시험으로 평가방식을 바꾸는 것이 학벌주의를 깨뜨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나 글쓰기와 말하기의 숙달은 대학수학능력을 높이는 것과 연관이 있을 뿐 학벌주의와는 사실상 관련이 없다. 학벌주의는 십대 때의 평가로 얻는 특정 대학간판을 통해 학벌 패거리를 구축하여 권력을 독점하는 전근대적 행태를 뜻한다. 즉 학벌주의는 입시 방식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대학입시 이후에 형성되는 고정된 대학서열화와 특정 학벌 패거리 구축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학벌사회의 개선은 입시를 통해 형성되는 고정된 대학서열화와 특정 학벌 패거리들에게 부여되는 과중한 권력과 도덕적 독점의 제어에 있다.
다음으로 천씨는 도서관 지원을 강화하고 논술을 정규과목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나 역시 차선책으로 논술과 같은 교육을 정규과목화하는 것에 동의하며 논술과목보다는 논리학과 비판적 사고를 배우도록 철학 과목을 개설하고 이 과목을 전문 학위자들이 담당한다거나 학위자들이 교수가 되기 전에 몇 해를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것도 정부가 검토했으면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차선책에 불과하다. 사실 논술과목을 공교육에 포함시키자는 천씨의 주장에는 지금 몇몇 대학교들이 논술시험을 시행하고 있으니 공교육에서 논술교육을 담당하자는 생각이 담겨 있다. 이는 사교육 혜택을 못 받는 약자에 대한 배려이지만, 초·중등 교육이 대학 입학시험에 종속돼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학교의 학원화를 막을 수 없다. 그간 시행되어 온 객관식 시험제도가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유 능력을 측정할 수 없으며 비판적 글쓰기와 논리적으로 말하기가 대학수학능력의 본질이라는 주장들은 좀더 진보된 생각이라고 본다. 따라서 초·중등 교육과 입시의 평가방식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꿔 학교교육을 말하기와 글쓰기 위주로 견인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비판적 사유의 지반을 형성할 수 있도록 철학을 모든 고등교육의 정규과목으로 신설하고 체계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들이 입시에 종속된 공교육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의 지점 아래 토론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공교육 정상화 논의는 학원을 전전하는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도록 공교육이 사교육까지 담당하자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 정상화는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이 아니라 얽힌 모순의 뿌리인 학벌사회의 해소를 통해 공교육 본래의 취지를 되찾을 때 얻을 수 있다.
이박동건/학벌없는사회 푸른모임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