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학작품을 배우면서도
문학수업은 어렵고 재미없다
작가 의도를 묻는 문제 있는 한
부담스러운 공부일 뿐이다 학교 문학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는 오늘 배울 시의 제목을 칠판에 쓰신다. 그런 다음, 선생님께서는 ‘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보자고 말씀하신다. 깨끗한 이미지, 순수한 이미지라고 대답하는 몇몇 학생의 대답에 선생님의 얼굴은 밝아진다. 학생들의 대답을 칠판에 적는 선생님의 손은 바빠진다. 학생들도 교과서에 그것을 받아쓰기 위해 손이 바빠진다. 그 순간, 어떤 한 학생이 ‘무서운 이미지’라고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한다. 그러자 선생님의 손은 멈칫, 잠시 멈춘다. “글쎄다. 무서운 이미지는 좀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신다. 학생들은 ‘무서운 이미지’라고 쓰려다 만 것을 지우개로 재빨리 지운다. 학생들은 학교 문학 수업 시간에 여러 문학 작품에 대해 배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평소 문학 작품을 즐겨 보는 학생들도 문학 수업이나 수능 언어 영역 공부는 어렵고 재미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언론 매체에서 최승호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기사를 읽었다. 최승호씨는 대입 수능 모의고사에 단골로 출제되는 작품의 작가이다. 그는 정작 시인인 자신이 자신의 시에 대한 문제를 모두 틀렸다며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미스터리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 작품은 프리즘과 같은 것이어서 해석 하나로 작품을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많은 문학 작품을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작품을 감상하고, 저 나름대로 자신의 상황에 적용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등의 능동적인 활동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학생들은 먼저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도 전에 이 시어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와 같은 것들만 필기하기에 바쁘다. 문학 교육에서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능동적 활동은 사라져 가고 획일적인 답만을 가르치고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학생들은 획일화된 교육에 익숙해져 문학 작품을 접할 때 제대로 음미할 수 없고, 즐기기보다는 ‘공부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것은 객관식 답안에서 하나의 ‘적절한’ 또는 ‘적절하지 않은’ 답을 선택하는, 수능 시험 형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능 언어 영역에는 시,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제시한 후 그 작품에 대해 묻는 오지선다 문항들이 있다. ‘다음 시어(詩語)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다음 중 작가의 의도로 적절한 것은’ 등. 한 권의 책을 세 사람이 읽는 것은 세 사람이 다 다른 책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문학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은 학생들 저마다의 다양한 감상과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수능 시험 문제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출제되고 있다. 또 많은 수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창의성을 키우고 생각의 폭을 충분히 넓힐 수 있는지, 또 수능 시험이 개개인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상대방의 나와 다른 의견을 배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학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능동적인 참여와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능 시험 또는 대학 입학을 최대 목표로 두다시피 한 현 교육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김정민 서울 정의여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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