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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06 18:53 수정 : 2010.01.06 21:55





8년간 마을 단위 임시법정 세워
동족상잔의 내전 진실 규명과 화해
활동 시한 만료 앞둔 진실화해위
손도 못댄 사건 수두룩해 연장 필요

1994년 약 80만명의 대학살이 있었던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지난해 12월9일 ‘통합과 화해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대학살이 있은 지 15년, 르완다 정부가 이 비극적 사건의 상흔을 씻고자 설립한 ‘국민통합화해위원회’(NURC)의 창립 10돌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이는 인권국가로서 거듭난 자국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속뜻도 담겨 있었다.

인구 1000만 정도의 작은 나라인 르완다는 과거 벨기에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후투와 투치로 민족이 분열되고 그로 말미암아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렀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대사와 많이 유사하다. 르완다의 과거사 청산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내전 중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사건 처리를 위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 ‘가차차’(Gacaca) 제도다. ‘가차차’는 수많은 가해자들을 일반 법정에 모두 세울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르완다의 전통적 재판제도를 기초로 9000개의 마을 단위에 설치된 임시법정이다. 재판을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점에서는 우리의 과거사 청산 방식과 차이점이 있으나, 마을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가차차 법정 공방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을 꾀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진실화해위원회와 지향점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르완다의 과거사 청산 과정은 우리의 과거사 청산 운동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진실화해위가 조사활동을 시작한 지 4년이 되는 지금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동안 이룩한 성과가 적지 않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족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신청 접수된 사건 1만1021건의 75% 정도가 처리되었고, 나머지 약 25%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에 있다. 그 대부분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또 접수되지 않은 사건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으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신청 시기를 놓친 유족들의 민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진실규명된 사건도 실제로는 신청 사건에 한정된 것이어서 사건 전체로 볼 때는 미완으로 끝난 것이 많다. 지난해 11월 언론에 보도된 국민보도연맹사건도 그 한 예로, 진실화해위에서는 4934명을 희생자로 확정해 발표하였으나, 이는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체 희생자 잠정 추정치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규명된 사건조차 국가기관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실상 ‘화해’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르완다와는 달리 우리의 과거사 청산은 그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극복해야 할 난관이 많다. 최근 몇십년 사이 과거사 청산을 위해 진실위원회를 설립한 나라는 35개국이 넘는다. 이제 과거사 청산의 성공적 수행 여부는 인권국가로서의 국격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한 것이다. 4개월도 안 남은 법적 활동 시한 내에 진실화해위의 과거사 정리가 온전히 마무리되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그렇다고 과거사 청산의 과제를 중도이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21세기 인권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민통합과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남은 기간 진실화해위원회의 분투가 필요함은 물론 그 이후의 대안 마련에도 안팎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홍순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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