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면권 남용 법의 형평성 훼손
일반범죄보다 큰 범죄 저지르고도
가진자들은 집유·보석·사면 등 면죄부
어찌 법앞의 평등이라 할 수 있나 헌법상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집행권에 의하여 사법권의 효과를 변경하게 되는 것으로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간섭이다. 사면권은 정치적 남용이나 집권당에 유리한 조치로 행사할 수 없고, 진실로 국가이익과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또한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이 단행한 사면과 복권은 집권자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행사되었고, 유달리 권력집단에 속하는 특권층 및 재벌 기업인들의 면죄부로 활용되었다는 면에서 국민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면은 법의 적용과 집행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었다. 법치주의의 토대를 흔들어 버리는 근본 원인은 법집행의 불공정성이다. 불공정한 법집행의 출발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과 비리 기업인, 이른바 ‘가진 자’들에 대한 집행유예의 남용, 보석 허가와 형집행정지의 남용, 가석방의 특혜에서 기인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비리 기업인이나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인사들이 구치소 및 교도소 벗어나기 방법이 수학문제 공식 적용하듯 되어 있다. 구속적부심을 제외하면 보석→구속집행정지→형집행정지→가석방→특별사면 등 다섯 차례의 공식을 통하여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 마지막 방법으로 특별사면이 남용된다. 특별사면의 명분은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을 내세우고,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이루어진 특별사면은 국민통합·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탈세와 불법 정치자금 제공, 배임과 횡령 등 일반 범법자보다 더 큰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도 얼마 안 가 정치적 배려로 특별사면을 받고 쉽게 면죄부를 받는 사법 현실이 법집행의 형평성을 훼손하고 있다.
2007년 3월 한 시사프로그램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특별사면을 받은 사회 고위층 인사 153명의 법 적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1인당 선고 형량은 평균 30.9개월이었지만 실제 수감 기간은 10.8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죄를 짓고도 구치소에 단 하루도 수감되지 않은 경우도 82명으로 전체의 53.6%였다. 헌법상의 평등권 조항이 유명무실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거액의 뇌물을 제공하고, 배임죄와 횡령죄를 범하여도 집행유예나 특별사면 등으로 복역하지 않고 석방된다는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법치주의의 확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벌레가 거미줄에 걸리면 하루살이와 같이 몸집이 작은 벌레들은 거미줄을 빠져나갈 수 없지만, 큰 벌레들은 거미줄에 걸려도 그 거미줄을 뚫고 빠져나가 버린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사소한 법 위반에도 법이 규정하고 있는 처벌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른바 힘 있고 가진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받아먹고도 ‘떡값’이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고, 큰 죄를 범하고도 구속되기만 하면 휠체어를 타고 들것에 실려 얼굴에 마스크를 한 채 지병을 이유 삼아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법치주의의 출발은 법을 어긴 범죄자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것이며, 법 앞의 평등은 법률의 내용이 평등할 뿐만 아니라 법의 집행도 평등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가 올곧게 뿌리내리고 바로 서려면 재벌 기업인들을 포함한 이른바 ‘가진 자들’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의 종식과 불공정한 법집행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철호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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