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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3 18:01 수정 : 2005.06.03 18:01

교과서 협력은 반드시 쌍무적인 관계일 때만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참여 위원들이 ‘국가를 대표’하지 않고 학문적 근거와 자율성에 입각한 ‘개인’이어야 한다.

지난 5월31일, 제1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활동이 끝났다.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 차원의 정례적인 회의가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만남 자체가 의미 있었다. 더구나 한-일 관계사와 관련된 19개 공동연구 주제를 통해 서로 어떤 차이와 공통된 역사인식이 있는지 명확히 확인했다.

하지만 제1기 위원회는 공동연구의 성과를 교과서에 반영하지 못했다. 공동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제에 대해 한·일이 각각 논문을 발표했다. 또 임진왜란에 관해 한국 쪽은 전쟁 전반의 흐름과 침략의 미화를 지적했다면, 일본 쪽은 개전 3개월간의 군량문제 등에 관심을 두는 등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월 한·일 정상은 제2기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그런데 난관이 하나 있다. 한국 쪽은 제1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위원회의 명칭에 ‘교과서’를 명기하고 ‘교과서 연구(역사교육)분과’를 새로 설치하자고 일본 쪽에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쪽은 교과서 검정 및 발행제도를 이유로 거절했다.

독일 등 유럽의 교과서 협력은 권력자들의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는 데 반해, 일본의 권력자들은 교과서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당분간 바뀔 전망도 없다. 왜냐하면 유럽연합에 합류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됐던 독일과 달리 일본의 지도자들은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보다 미-일 동맹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2005년도 후소사 교과서가 2001년도와 달리 반미를 감추고 탈아입미(脫亞入美)를 새로이 강조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협력의 형식은 역사쟁점을 학문적으로 해소하고, 교사와 학생 등에게 그것이 직접 전달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2기 위원회의 명칭에 ‘교과서’를 붙이거나, 공동연구의 성과를 반드시 교과서에 반영해야 한다고 명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권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일본의 교과서 채택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조처이다. 때론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교과서와 역사인식도 토론 대상이어야 한다. 유럽과 한·중·일의 경험에서 볼 때 교과서 협력은 반드시 쌍무적인 관계일 때만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위원들이 ‘국가를 대표’하지 않고 학문적 근거와 자율성에 입각한 ‘개인’이어야 한다.

나아가 제2기의 활동이 좀 더 성과적이려면 단계적인 중장기 계획 속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가 교과서 협력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과서의 잘못된 서술을 바로잡는 데 있지 않다. 상대방에 관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편견, 무지, 공격적 적대감 등을 해소하고 신뢰와 협력을 증대시켜 평화를 지향하는 데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하고 함께 서술한다는 것은 그 수단이자 새로운 도약의 발판에 불과하다. 특히 한-일 간의 교과서 문제는 역사 관련 현안의 종합판이므로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풀어내는 실마리다.


하지만 우리의 분명한 현실은 아직 교과서를 직접 검토하는 수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민간 차원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한·중·일 공동교과서를 만들자 정부 차원의 삼국간 공동연구도 진행하자고 환상적으로 발언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단계적인 중장기 계획이 없다는 반증이다. 당장 제2기 위원회를 가동하는 문제도 고민해야 하지만, 어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질 것인지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신주백/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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