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03 18:00 수정 : 2005.06.03 18:00

노사 갈등이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해결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사회적 협약’의 체결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노사 불신과 그에 따른 파업의 악순환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런데 5월 말 ‘파업도시’로 악명 높은 울산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70여일이나 파업을 계속하면서 대량 구속과 유혈 충돌을 반복하던 건설플랜트노조 사태가 ‘사회적 협약’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타결된 것이다. 건설플랜트 노사 당사자와 관련 당사자가 모두 참여한 ‘노사정 공동협의회’가 5월27일 단체협약에 준하는 타협을 극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그날로 예정됐던 전국노동자대회는 경찰력과의 충돌이 아닌 안도와 환호성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건설플랜트노조 사태의 타결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갈등 해결의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지역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갖고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번 건설플랜트노조 사태에 시민단체가 개입하여 적극적 중재를 담당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석유화학공장의 건설과 유지·보수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서 전원이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바깥에서 도시락을 먹고 공장 내부의 화장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묵묵히 일해 왔다. 건설플랜트 노조가 자신을 고용한 전문 건설업체 쪽에 교섭 안건으로 요구한 내용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여건에서 일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근로계약서 작성, 8시간 노동 준수, 4대 보험 적용 등으로 구성된 이들의 요구안은 마치 전태일이 분신한 1970년대 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는 전문 건설업체들은 울산 지역 400여 업체의 경영 사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통일적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협상을 계속 거부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과 관련된 실질적 권한의 소유자인 에스케이를 비롯한 대기업들 또한 자신이 법적 협상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갈등 해결에 나서는 것을 기피했다.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자 건설플랜트노조는 3월 중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처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데도 근로감독권과 중재권을 행사해야 할 노동부 지방사무소는 시종일관 소극적 태도를 견지했다. 사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더욱 악화되어 갔다.

그러나 5월 말 들어 건설플랜트노조 사태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울산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을 제안하고 나온 것이다. 5월17일 경실련, 시민포럼 등의 시민단체는 건설플랜트 노사 당사자뿐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노사정 공동협의회’를 구성하여 사태를 일괄해 타결할 것을 제안했다. 시민단체의 이러한 제안은 울산시에 의해 받아들여져 5월25일 울산시장은 전문 건설업체와 원청회사 격인 공장장협의회, 울산상의, 울산지검, 울산지방경찰청 등을 설득하여 건설플랜트노조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게 된다. 사흘이란 마라톤 협상 끝에 타결된 ‘사회적 협약’의 합의 내용은 임금 등 근로조건,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규제, 조합원 채용 때 불이익 금지, 노조 인정과 편의 제공 등의 네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이로써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건설플랜트 업체 및 에스케이 등의 대기업 또한 건설플랜트노조를 실체로 인정함으로써 정상적인 노무관리와 이를 통한 효율적 공장 건설 및 유지보수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열릴 실무협상에서 노사간의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구가 없는 듯 보였던 노사 갈등이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다자 협상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처럼 시민들이 참여하는 갈등 해결과 ‘사회적 협약’의 체결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노사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플랜트노조 사태의 교훈을 차분하게 성찰하길 기대해 본다.


조형제/울산대학교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