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파괴한 숲의 환경변화가
산짐승들의 먹이 빼앗아간 것
근본적 원인 진단은 없이
개체수 줄이자는 오락프로까지 갖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멧돼지를 잡는 프로그램이 드디어 예능이라는 포장을 쓰고 공중파를 탔다. 방송을 통해 멧돼지 사냥의 현장이 전 국민에게 보여지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특히 어린 청소년들에게 ‘자연이란 인위적으로 조절 가능한 것’이라는 인간의 오만함을 교육하게 될까 봐 마음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방송은, 멧돼지가 우리 부모님들의 농사를 망치는 현장을 보여주고,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유독 강조하며 프로그램의 타당성과 자기 변론에 힘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방송사 책임자들의 생각은 오로지 한 가지 ‘멧돼지는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다’라는 것이었다. 애처롭다. 멧돼지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에 대한 대처 방법은 과연 잡는 것만이 최선의 길인가? 문제를 단순히 ‘급격히 늘어난 멧돼지 개체 수’로만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멧돼지의 개체 수가 늘어난 만큼 먹이사슬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노력은 얼마나 기울여 봤을까? 예컨대, 한국의 산림은 근대화 이후 침엽수림으로 급격히 탈바꿈했다. 침엽수림은 동물들에게 유익한 먹이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와 밤이 열리는 밤나무는 활엽수다. 하지만 활엽수림은 나무를 심는 인간의 당대에 재화로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침엽수 조림을 꾸준히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 한국의 산림 환경으로는 동물들이 산속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게 심각함의 핵심이다. 소나무 재선충은 꾸준히 한국의 소나무들을 괴롭히고 있는 해충이다. 하지만 해충을 잡기 위해 방제 작업을 하는 노력에 앞서, 왜 재선충이 기승을 부리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해야 함도 같은 이유다.
아무리 건강한 숲이라도 20% 정도의 나무들이 병충해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래야 해충을 잡아먹는 새가 살 수 있고, 하등 동물들의 먹이사슬이 건강하게 유지된다. 이처럼 오늘날 숲의 병충해가 늘어나는 것은 먹이사슬 구조를 깨뜨린 인간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참을 수 없는 방송의 가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 숲을 헤집고 다니며, 고함을 지르거나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 등을 찾아서 ‘기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흥미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깊은 산속의 자연을 자기 안방처럼 자유롭게 활용(?)하는 사람들을 마치 자연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선망의 대상처럼 그리기도 한다. 산에서 난 것이라면 단 하나의 버섯이라도 인간의 것이 아니다. 마땅히 산에서 살고 있는 산짐승이 주인이다. 인간들이 모두 싹쓸이해 거둬먹고는 급기야 먹을 것이 없어 인간의 농사를 해쳤다고, 그저 ‘복수의 길’을 모색할 뿐이다. 자연의 숭고함과 그 연약함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없이 흥미 위주로 만들어지는 방송의 가벼움에 한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숲을 연구하는 지식인들의 직무유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끝 모를 인간의 오만과 무지는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임재진 경기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