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외치며
러시아 배려는 뒷전
근시안적 외교 벗어나야 최근 주러시아 대사로 현 정부에서 초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윤호씨가 내정되었다. 정부는 이 내정자에 대해 “가스, 철도 등의 경협사업은 물론 정치와 문화 등 양국 관계를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인사”라고 말했지만 그를 내정한 이유는 러시아와의 원활한 경협사업 추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마도 신임 러시아 대사에 대한 러시아 쪽의 반응은 매우 쌀쌀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러시아는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를 외치며 자신들을 석유·가스나 공급하는 나라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계에서도 러시아의 불만은 뚜렷하다. 한국에 러시아의 중요성은 자원과 경제, 안보 등 매우 큰 것인데 한국의 러시아 투자는 터키보다 뒤처진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7월31일 글레프 이바셴초프 전 러시아 대사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예방하여 서울에 적당한 장소가 없으면 옛 러시아 공사관 자리에 조그만 예배당이라도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정교회 초대주교인 알렉세이 2세도 서울에 정교회 성당을 세워달라고 이 대통령에게 요청한 바 있다. 또한 신임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대사도 최근 외교통상부에 이 문제의 진행상황을 문의했으며, 올 안 오세훈 서울시장을 예방해 재차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의 견해는 다소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특정 종교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종교 시설이 서울에 들어설 수 있도록 배려해준 전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 한국이슬람 사원 부지를 무상으로 마련해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오일 쇼크와 중동 건설 붐이라는 당시 정세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정부도 진정 자원외교의 실리를 취하고 싶다면 이러한 러시아 쪽의 요구에 성의와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1884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매우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 이후 러시아는 현실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먼 나라로 여겨졌다. 1990년 9월 양국의 외교관계 수립에 대한 협정이 조인된 이후 한-러 관계는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역대 한국 정부가 취한 대러시아 외교는 러시아 쪽의 처지에서 보면 매우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얻은 실익은 별로 없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러시아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에 걸맞은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동안 주러 대사 중에 러시아어를 구사하거나 대러 관계의 특수성을 제대로 인식한 대사는 이인호 대사뿐이었다는 점에서 정권뿐 아니라 정당들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또한 2년반 정도의 짧은 대사 재임 기간도 양국 간의 신뢰 관계 수립에는 짧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 문화의 해’를 선포하여 자원외교의 실리를 누린 바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자원의 보고라 하는 러시아 사하공화국에서 한국문화원을 지으라고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였는데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도로 반납해야 할 실정이다. 반면에 일본은 자비를 들여 문화원 건물을 짓고 있다. 이런 현실을 러시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근시안적인 외교관계에서 벗어나 문화외교 등 포괄적인 접근을 하여야 한다. 김형주 동서대 객원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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