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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1 18:06 수정 : 2009.11.01 18:06





홈스쿨링 하며 꿈 펼치던 동생
그 꿈을 위해 영재고 준비하는데
창의력 좋지만 선행 모자란 아이로 전락
학원가랴 과외하랴 꿈을 잊어가고 있다

저녁 9시50분쯤 학원 수업을 마친 동생을 데리러 간다. 잔뜩 지친 모습, 학원이 있는 대치동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은 넉넉잡아 1시간. 누나를 옆에 두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조용히 피엠피(PMP)에 저장된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다.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동생에게 왜 그러냐 물어보니, 졸고 있었는데 동영상 속 선생님이 졸음을 쫓아 주었단다.

‘외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게 된다면, 학교 특성화란 목표는 허울로 전락하고 대신 대학 입시를 위한 학교 간 무한경쟁 구도가 굳어질 우려가 크므로 자율형 사립고 전환 방식이 아닌 폭넓은 대안이 필요하다’는 <한겨레> 사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우리는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해오면서 가장 근본적이고 강조되어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도를 개혁하기에 앞서 ‘배움’에 대해서 그 의미를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은 아닐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 통합 5년제 대안학교를 다녔다. 체벌도 없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도 없었지만, 대안학교임에도 우리가 유일하게 ‘세뇌’당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학교 교가 가사이기도 한 학교의 교육철학.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선생님들과 노래를 부르며, 정말 노래 가사처럼 배워가며 그렇게 머리에 박혔다.

그러나 나보다 4살 적은 동생은, 나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1년간 홈스쿨링을 하다가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수학과 과학에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하는 영재반 프로그램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영재고’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혼자서 조사를 하더니 문득 부모님에게 하는 말. “서울에 있는 학원에 가야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마침 독일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왔고, 동생은 상경했다. 아마도 그 아이가 서울에 온 것부터가 그 ‘꿈의 딜레마’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과학 실험과 수학, 과학 집중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재고 진학을 희망하던 동생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은 어느새 영재고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창의력을 더 키워주겠지 싶었던 영재고를 준비하는 과정, 그 속에서 동생이 처음에 가졌던 꿈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내버려져 있다. 치열한 경쟁 구도에 진짜 꿈이 밀린 것이다. ‘창의력 대장’이었던 아이가 한순간에 ‘창의력은 좋지만 선행이 모자란 아이’가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는 자기가 너무 뒤떨어지는 것 같다며 과외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옛날엔 내 이름 석자를 제 맘대로 분석해서 내 고유의 숫자도 만들어주고 하더니 요즘엔 학원에서 친 시험 성적과 제 등수에 대해 말할 때만 숫자 이야기를 한다. 더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꿈은 ‘좋은 대학’으로 단일화되었다. 수능을 열심히 배우며 좋은 대학에 갈 꿈을 꾸라는 강요를 받는다. 그들의 꿈은 ‘공통의 꿈’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 교육 제도, 학부모 삼위일체가 되어 지정해 놓은 꿈. 더 무서운 것은 대안교육을 받은 나도 우리 사회가 주는 이 ‘꿈’의 딜레마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는 못했다는 것. 속이 상한다. 참 가슴이 아픈 딜레마다. 단지 “영재고 시험 칠 때까지만 자유롭게 생각하는 걸 참아, 견뎌내”라고 말해주는 게 유일하게 하는 말인데 그 말조차 내뱉고 나면 씁쓸하다. 동생은 숙제를 다 해놓고 새벽 1시가 넘으면 잠이 든다.

현 정부는 단지 국민에게 사교육비 절감 효과를 보여주는 것에 급급해하면 안 된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언제까지나 그들이 자유롭게 자기들만의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것이 아니다.

이예나 서울 관악구 봉천7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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