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제도 꽁꽁 숨겨 놓아
선정기준 수사하듯 찾아내
일 느는데 공무원수 그대로
감세로 지자체도 지원 기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의 ‘중점관리 대상 사업’으로 분류된 5대 사업 중 저소득층 생활안정 지원은 2조7000억원이 배정됐으나 9월 말까지 1조2000억원만 집행되었다. 집행률이 44%로, 5대 사업 가운데 꼴찌이다. 중앙정부의 추경예산 집행률보다 집행률이 더 떨어지는 제도도 있는데, 그것은 서울시의 차상위계층 월세입자 주거비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8년에 30만가구분을 책정했으나 실제로 지원된 가구는 3200가구로 예산 대비 지원율이 겨우 1.06%에 불과했다. 올해도 집행률이 저조하기는 작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집행률 저조 원인을 일부 언론은 거시경제 상황이 추경 편성 때보다 호전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줄었는데 정부가 경기 예측을 잘못하여 너무 많은 예산을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부도 예산을 다 소진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수혜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면서 내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을 올해보다 2.8% 축소했다. 언론 지적대로 경기회복으로 인하여 빈곤이 퇴치되어 예산집행률이 떨어진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개발연구원 발표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빈곤율은 평균 0.6% 상승한 데 견줘 한국의 빈곤율은 4~5%포인트 증가하였다. 예산을 소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정기준이 터무니없이 까다롭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적게 배분하고, 제도를 홍보하지 않고 숨겨 놓고,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인 선별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또 복지공무원 수 감축도 한 요인이다. 공무원들이 업무의 양을 줄이기 위하여 선정을 기피하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 빈곤문제연구소의 상담원이 지난 8월20일 인천시 동구 만석동의 시유지에 지은 무허가 주택 지역의 독거노인 13명을 방문상담했는데, 그중에서 한시생계비 지원제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가구는 단 3가구에 불과했다. 서울시의 저소득 틈새계층 지원사업의 경우는 선정기준을 인터넷에 올리지도 않고, 보도자료를 배포하지도 않고, 현수막·팸플릿과 같은 홍보물도 제작하지 않았다. 연구소 활동가가 1월부터 실시된 틈새계층 지원사업의 선정기준을 알아내기 위하여 마치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듯 활동하여 겨우 선정기준을 찾아낸 것은 10월이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신통하게 책정된 예산 159억원의 반 정도는 소진되었다. 아마도 관계자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들만 수혜를 받지 않았을까 의심이 간다. 감세조치로 지방분권교부세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낮고, 수급자 수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갖은 이유를 대면서 지원을 기피하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한시생계비 지원, 희망근로, 재산담보부 융자제도 등 새로운 복지제도 도입으로 업무가 크게 늘었는데도 공무원 수를 늘리지 않은 것도 예산 집행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복지예산은 보건복지가족부 소관만 해도 2005년 8조6000억원에서 2009년 18조2000억원으로 4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2005년 9094명에서 2008년 12월 9945명으로 10%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올해는 2007년보다 정원은 191명 늘었지만 현원은 오히려 168명 줄었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복지공무원들은 가히 태업 수준으로 일을 한다. 서울 한 구의 담당자는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어서 희망근로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는가 하면, 술 마시고 왔다는 이유로 신청을 봉쇄하는 등 없는 기준을 멋대로 지어내는 방법으로 선정을 기피했다. 인천의 어느 공무원은 청각장애인 집에 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조사를 하지 않았다.
정부는 제발 야바위 노름을 그만하고 남은 저소득층 생활안정 지원 예산을 풀어 저소득층의 겨울나기를 도와야 할 것이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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